동악(東岳) 이안눌…서울 남산의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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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東岳) 이안눌…서울 남산의 별칭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0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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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58)
▲ 동악 이안눌의 영정.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자민(子敏). 조선 중기 문학사를 빛낸 시동인(詩同人) ‘동악시단(東岳詩壇)’의 주창자다. 특히 그는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4379수(首)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시를 남겼다.

서울 남산(南山)의 별칭인 동악(東岳)에 살았기 때문에 이안눌은 스스로 ‘동악’을 호로 삼았다. 그가 살았던 집의 위치는 현재 동국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서울 중구 필동이다.

영조 때 이안눌의 현손인 이주진이 그곳 바위에다 ‘동악선생시단(東岳先生詩壇)’이라 새겨놓았는데, 1984년 동국대학교에서 고시학관을 지을 때 그 바위를 학생회관 옆으로 옮기다가 쪼개져버렸다. 현재 그 쪼개진 조각들은 동국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동악시단’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이안눌의 집과 그의 호 ‘동악’의 유래에 대해서는 또 다른 후손인 이석이 남긴 ‘동원기(東園記)’라는 글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동악선생은 남산 아래의 이름난 정원과 대저택을 소유하고 계셨다. 처음에는 선생의 외가(外家)인 구씨(具氏) 가문에서 거처했던 곳인데, 선생께서 구씨 가문의 제사를 모셨기 때문에 선생의 소유가 된 것이다. 대개 남산의 한 자락이 구불구불 동쪽으로 뻗어 나와 이곳 동원(東園)의 정상에 이르게 되었다. 그 형세가 마치 당기는 듯 혹은 마치 안으려는 듯 별도로 하나의 구역을 이루고 있다. 선생께서 동악(東岳)을 호로 삼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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