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柏谷) 김득신…59세에 과거급제한 입지전적인 문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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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곡(柏谷) 김득신…59세에 과거급제한 입지전적인 문신·시인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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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61)
▲ 충청북도 증평군에 조성된 김득신 상. <사진=증평군 홈페이지>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자공(子公). 자신의 노둔함을 - ‘백이전(伯夷傳)’을 1억 번이나 읽었다는 고사가 전할 정도의 - 치열하고 끈질긴 노력으로 이겨내고 나이 59세 때 과거에 급제한 입지전적인 문신이자 시인(詩人)이다.

특히 그의 시문은 조선 중기 4대 문장가인 택당 이식이 “그대의 시문이 당대의 제일”이라고 평할 만큼 대가의 반열에 들었다.

그는 자신의 세거지(世居地)였던 오늘날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의 백전리(柏田里)에서 호를 취해 ‘백곡(柏谷)’이라고 했다.

또한 ‘구석산인(龜石山人)’이라는 호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 호는 자신이 살았던 청안현(淸安縣: 지금의 괴산군) 좌구산(坐龜山) 아랫마을인 구석산촌(龜石山村)에서 따온 것이다.

더욱이 벼슬에 큰 뜻이 없어 과거에 급제한 2년 후인 61세 때 충청도 괴산으로 낙향해 선대의 묘 근처에 ‘취묵당(醉墨堂)’이라고 이름 붙인 두 칸짜리 초당(草堂)을 짓고 거처하면서 괴산을 끼고 흐르는 강인 괴강(槐江)에서 취한 ‘괴강노옹(槐江老翁)’을 자호(自號)로 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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