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재(寒水齋) 권상하…“가을 달이 차가운 물에 비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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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재(寒水齋) 권상하…“가을 달이 차가운 물에 비추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1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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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65)
▲ 한수재 권상하의 초상.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치도(致道).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다.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 그리고 우암 송시열로 이어지는 서인 노론 계열의 학통을 계승한 정통 주자학자다.

조선 후기의 최대 철학 논쟁인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인 호락논변(湖洛論辨)이 그의 문하에서 일어났다. 즉 그의 제자인 이간과 한원진 사이에 일어난 논쟁이 바로 ‘인물성동이논쟁’이었다.

당시 권상하는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은 서로 다르다는 ‘상이론(相異論)’을 주장하는 한원진을 편들었다.

인성과 물성은 서로 다르지 않으므로 만물은 평등하다는 사상으로까지 발전한 상동론(相同論)에 비해 권상하의 철학적 입장은 송시열의 수제자답게 지극히 보수적이었다.

서인과 남인이 권력을 뺏고 빼앗기는 숙종 연간의 환국정치(換局政治)에 환멸을 느꼈던 권상하는 늦게까지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 연마와 제자 교육에 전념했다.

그는 나이 35세 때인 1675년(숙종 1년)에 청풍(淸風)의 황강(黃江: 지금의 충북 제천군 한수면 황강리) 옆으로 거처를 옮겨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정통 주자학자답게 주자(朱子)의 시 가운데 “가을 달이 차가운 물(寒水)에 비추네(秋月照寒水)”라는 구절을 빌어 자신의 호를 ‘한수재(寒水齋)’라고 하였다.

또한 황강 가에 거처한다고 해서 ‘황강거사(黃江居士)’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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