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謙齋) 정선…“겸손함은 형통하게 하니 군자가 끝을 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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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謙齋) 정선…“겸손함은 형통하게 하니 군자가 끝을 둘 곳이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10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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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66)
▲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상권 첫 장에 장첩된 ‘독서여가’. 인왕곡 인왕정사에서 생활하던 모습을 그린 자화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간송미술관 소장>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원백(元伯). 조선 고유의 화풍(畵風)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개척해 최완수씨가 일찍이 “조선 왕조 후기 문화가 조선 고유색을 한껏 드러내면서 난만한 발전을 이룩하였던 문화절정기(文化絶頂紀)”라고 말한 진경시대(眞景時代)를 활짝 연 사대부 출신의 화가다.

숙종 즉위 초반에 태어나 영조 시대에 주로 활동한 정선은 조선의 독자적인 산수화풍인 진경산수화를 창시했다.

그는 중국 산수와 중국 사람을 소재로 삼은 관념산수화의 잔재를 완전하게 청산하고 조선 산천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조선 사람의 모습을 묘사한 진경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한 최초의 화가였다.

스무 살 초엽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35살이 되었을 때 금강산 여행에 나서면서 조선의 자연풍경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정선은 이후 18세기 조선의 산수화를 완성하며 대가로 거듭났다.

‘겸재(謙齋)’라는 호는 정선이 즐겨 공부했던 『주역(周易)』의 15번째 괘인 ‘겸괘(謙卦)’의 구절에서 그 뜻을 취한 것이다.

이 겸괘에서는 ‘겸(謙)’이라는 글자에 담긴 큰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다.

“겸형 군자유종(謙亨 君子有終).” 해석하자면 “겸손함은 형통하게 하니 군자가 끝을 둘 곳이다”라는 뜻이다.

정선이 평생의 철학으로 삼았던 것이 다름 아닌 ‘겸손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선이 남긴 조선 각지의 명산 풍경, 즉 박연폭포 및 금강산과 인왕산 그리고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남겨 놓은 한강 주변의 그림들은 오늘날에도 빼어난 아름다움 못지않게 옛적 우리 산천에 대해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러나 인공(人工)의 힘으로는 감히 다 담을 수 없는 대자연(大自然)의 앞에 서면 누구라도 ‘겸손함과 공경함’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는 정선이 그린 ‘금강전도(金剛全圖)’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지만 정선 자신은 인공(人工)의 힘으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웅장함과 위대함 앞에서 오히려 ‘겸손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정선이 개척한 진경산수화의 미학은 그가 겸재(謙齋)라는 호에 담은 뜻처럼 ‘겸양과 공경과 절제’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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