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출세와 변절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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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출세와 변절의 정치학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5.04.15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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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들의 변명만 난무하고 있다.

자원개발 비리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사망하면서 남긴 일명 ‘성완종 리스트’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권력 실세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는 리스트에는 취임 두 달도 안 된 국정 2인자 국무총리를 비롯해 대통령 비서실장, 경남 도지사, 현직 국회의원들이 주연급으로 등장했다.

특히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현직 대통령의 선거캠프 자금담당자들에게 금품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똥은 불법 정치자금을 넘어 불법 대선자금으로 확산될 태세다.

그러나 리스트에 등장한 실세들은 하나 같이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아니 부인하는 정도를 넘어 성완종이라는 사람과 일면식도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언론은 연일 성 회장과 이들의 관계를 증명하는 사진과 비망록,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의 행태를 비난하고 있다.

『구별짓기』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위로 오르려면 고난을 함께 했던 사람들도 한때의 인연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변절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어려웠던 시절 함께 아파하고 도움을 주었던 이들을 매몰차게 버릴 수 있어야만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인이 되어버린 성완종 회장은 사망 당일에도 억울함과 서운함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망 전날 기자회견에 이어 당일 오전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는 어쩌면 자신을 매몰차게 버린 리스트 상의 권력 실세들을 향한 플랜A와 플랜B 성격의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이같은 경고조차 먹히지 않을 때 꺼내야 했던, 아마도 플랜C였을 것이다.

이미 위로 올라가 버린 그들에게 성 회장은 변절이 필요한 한때의 인연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가 사망해 버린 지금은 한때의 인연조차 부정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 또 다시 부정되고 있다.

어려울 때 함께 어려움을 극복했던 이들이 성공 후 갈라서는 사례는 비단 이번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동업으로 회사를 일궜지만 지분 분배 문제로 다툼이 벌어지고 결국 어느 누군가가 독립해 나가는 일은 국내 대기업 사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재벌총수 대부분은 자녀에게 기업의 상속권을 넘겨주기 위해 친동생마저 내치기도 했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위로 올라가 버린 이들에게 모든 이들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헌신을 요구했던 기업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조조정을 앞세워 해고에 혈안이 되고 선거에서 표를 구걸하며 온갖 공약(空約)을 남발했던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고통을 외면한 채 권력 유지를 위한 위정자의 길만 재촉하고 있다.

성완종 회장의 불법·비리혐의를 떠나 그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수뢰한 혐의가 하나씩 벗겨질 때 이들은 또 누구를, 무엇을 부정하고 자신의 억울함과 서운함을 어떤 이에게 호소하게 될지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들의 억울함과 서운함을 들어줘야 하는 더 높은 자리까지 오른 이는 또 어떤 변절을 필요로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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