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무역으로 성장한 미국의 또 다른 역사…“땅·사람·지식을 밀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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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무역으로 성장한 미국의 또 다른 역사…“땅·사람·지식을 밀수하다”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4.16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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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밀수와의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미국을 식민지배하던 영국은 미국을 다스리는 나라임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매기는 등 미국을 상대로 한 무역을 철저히 규제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7년 전쟁을 벌일 당시 군수품과 식량 등을 밀반입해 큰 수익을 올리던 미국의 밀수꾼들이 높아진 무역 장벽 탓에 어려움에 처했다.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야만 자유롭게 밀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욕망은 커졌고, 이는 미국의 자립을 부추키는 애국심이 되었다. 바로 미국 독립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미국이 독립에 성공한 데는 영국이 처한 지리적 약점이나 프랑스의 도움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이유, 그리고 그동안 숨겨진 채 수면 위로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워싱턴 군대에 보급되는 밀수품들을 막지 못해서다. 즉 영국은 미국의 밀수전쟁에서 패한 것이다.

독립혁명에 성공한 미국이 경제 성장을 이룬 데는 영토 확장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밀수꾼들은 유럽인들이 모피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서부 인디언들의 땅까지 침범했다.

밀수꾼들은 인디언들에게 독한 럼주를 팔고, 그 대가로 모피를 받았다. 이는 인디언들을 술독에 빠지게 하고 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점차 미국의 영토가 서부로 확장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다. 독립혁명에 성공한 미국은 당시 경제 흐름을 주도하던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영국으로부터 방적기, 소면기 등을 비롯한 여러 산업 기술과 전문 기술자를 밀수해왔다.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자진해 불법 이주한 영국인 기술자도 있었지만 미국은 건국 초기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지식재산부터 도둑질하기 시작했고, 이는 미국 경제 성장에 큰 발판이 되었다.

섬유산업의 중심 자원이 되는 면화는 또 다른 밀수 행태를 가져왔다. 면화 생산에 필요한 인력, 즉 흑인 노예를 아프리카에서 밀수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혹독한 대우를 당하며 이리저리 팔리던 노예는 국가적으로 정치적 이슈를 만들었고 남북전쟁의 씨앗이 되었다. 하지만 노예제를 반대하며 남북전쟁을 주도했던 링컨 대통령조차 면화를 밀수해 군수품과 바꾸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렇듯 경제 성장으로 대호황을 맞은 미국은 소비문화의 급진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이는 사치품 밀수, 책 무단 복제, 음란물 밀수, 술 밀수 같은 현상을 빚어냈다.

나라의 도덕성을 우려하기 시작한 정치인들은 밀수를 규제하기 시작했지만 규제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이를 피해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밀수의 규모는 커지기만 했다.

오늘날에는 마약, 총기, 담배, 문화재, 멸종위기 동물, 심지어는 어린 아기나 장기 매매로까지 밀수가 확장됐다. 나아가 인터넷의 발전으로 온라인 저작권 불법 도용, 불법 금융 거래도 과거 미국이 행해오던 밀수의 조직적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신간 『밀수꾼의 나라 미국: 불법 무역은 어떻게 미국을 강대국으로 키웠나』(글항아리)는 미국의 역사를 ‘정의와 자유의 수호’라는 이상적인 관점과는 정반대의 시각에서 접근한다.

브라운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연구하며 세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연구하는 피터 안드레아스는 ‘미국의 역사’를 ‘밀수의 역사’로 풀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영국에 식민 통치 시절을 당하던 시절부터 독립전쟁을 거쳐 산업혁명과 남북전쟁, 대호황 시대와 대공황 시대를 겪고, 오늘날 경제 초강대국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불법 무역과 연관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오늘날 미국은 불법 무역을 통해 들여온 물건들의 유통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에서 파생해 유럽 대륙과 대서양 사이를 오가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궁지로 내몰면서 만들어진 미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해적 행위를, 스스로는 해적 행위가 아니라고 합리화하면서 여전히 불법 무역을 자행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역사를 구성하는 것은 불법 무역의 흐름과 행태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며 불법 무역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와 어떤 역학관계 및 외교관계를 맺어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멕시코, 중국, 캐나다, 서아프리카 분쟁 지역 등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엮인 불법 무역과 그로 인해 발생한 21세기의 초국적 세계 범죄의 복잡한 역학관계는 결국 오래전부터 시작된 밀수의 역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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