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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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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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① 창신(創新)의 미학③

[한정주=역사평론가] 오늘날 우리가 고문의 전범인양 숭상하는 시문 역시 역설적이게도 옛 것을 모방하거나 답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까지 훌륭한 작품으로 칭송받고 있다.

옛글을 맹목적으로 좇아 진부한 표현을 써 인위적으로 화려하게 꾸미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모방해 가식적으로 지어낸 문장은 단지 흉내를 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볼품이 없어진다. 모방하거나 흉내를 낸 글을 보느니 차라리 그것이 본뜬 옛글을 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반면 비록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자기 안에 온축(蘊蓄)되어 있는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한 문장은 옛글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참신하고 창의적인 것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옛글이나 다른 사람의 글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감정과 생각의 표현은 고유할 뿐만 아니라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는 결코 둘이 존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나 자신에게서 나온 감정과 생각의 표현과 똑같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서 절대 나올 수 없다.

이덕무는 이렇듯 나 자신에게서 나온 감정과 생각을 가리켜 ‘진정(眞情)의 발로(發露)’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대개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하지만 또한 하늘 아래 완전히 똑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알아야 한다.

가령 교묘하게 꾸며 표절한 내용은 다른 사람의 눈과 마음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래서 박지원은 이덕무의 시를 비난하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덕무는 조선 사람이다. 산천과 풍속과 기후가 중화(中華)와 다르고 언어와 민요 역시 한(漢)나라나 당(唐)나라와 같지 않다. 그런데 만약 작법(作法)이 중화를 본받고 문체(文體)는 한나라와 당나라를 답습한다면, 나는 그 작법이 고상해질수록 그 뜻은 참으로 비루해지고 또한 문체가 비슷할수록 그 언사(言辭)는 거짓일 뿐이라는 것을 본다”라고.

그리고 박지원은 중국의 시문을 본뜨거나 답습하지 않고 조선의 산천과 풍속은 물론 조선 사람의 정서와 취향을 진실하게 드러내고, 옛 중국이 아닌 지금 조선의 모습을 표현한 이덕무의 시야말로 참다운 ‘조선의 시’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된 글이 나 자신에게서 나온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 즉 진정의 발로라면 조선 사람이 중국의 옛 시를 모방하거나 답습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본떠 억지로 꾸미거나 혹은 거짓으로 지어 낸 감정과 생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홍길주는 옛사람이 이미 많이 지어놓은 제목의 글이라고 할지라도 지금 글을 짓는 사람이 마주하는 상황과 대상, 느끼는 감정과 생각, 풍경과 사물의 정취는 옛사람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새롭고 신선한 내용의 글을 얼마든지 지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걸핏하면 어떤 제목은 이미 옛사람들이 많이 지어 놓았기 때문에 새로운 말을 만들어 신선한 내용의 글을 짓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것은 옛사람들이 이미 많이 지어 놓은 제목이라고 할지라도 글을 짓는 사람이 마주하는 상황은 옛사람이 처했던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가을밤 달을 마주 대하고(秋夜對月)’라는 제목은 옛사람이 이미 유명한 구절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오늘 내가 앉아 있는 누각과 눈앞의 산봉우리, 물과 나무는 모두 옛사람들이 마주했던 풍경이 아닌 새로운 대상일 뿐이다.

또한 ‘어떤 사람과 산수(山水)를 유람하고(游某山水)’라는 제목을 예로 들어보자. 이백과 함게 유람할 때와, 백낙천과 함께 유람할 때, 소식과 함께 유람할 때 각각 어떤 작품을 지었겠는가? 제목은 같을지라도 전혀 다른 내용의 구절이 등장할 것이다.

글을 짓던 당시 상황에서 작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 그리고 풍경과 사물의 정취가 제각각 달라 서로 침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홍길주,『수여방필(睡餘放筆)』>

따라서 살아 있는 글 혹은 참된 글 다시 말해 참신하고 창의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서 나온 감정과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나 자신에게서 나온 감정과 생각의 표현은 결코 둘 이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의 문장가로 스승 김택영이 고려와 조선의 대 문장가 아홉 명의 글을 뽑아 놓은 문선(文選)인 『여한구가문초(麗韓九家文抄)』를 수정·보완하여 다시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抄)』를 발간하는 작업을 했던 왕성순이 ‘홍석주가 동생 헌중에게 답한 글’을 소개하면서 가장 강조한 글쓰기 철학 역시 “글이란 반드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김택영과 왕성순이 엄선한 여한10가(麗韓十家)는 고려의 김부식·이제현, 조선의 장유·이식·김창협·박지원·홍석주·김매순·이건창·김택영 등이다.

“당(唐)나라와 송(宋)나라 이래로 문장을 잘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들 중에서도 유독 구양수를 높이 받들어 정통으로 삼았다. 구양수의 글은 반드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왔고, 반드시 사실에 바탕을 두었으며, 문장을 꾸미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나라 전겸익의 글은 손이 가는 대로 책을 펼쳐보면 그 화려함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단 한 편도 진부한 말을 사용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옛사람들이 지은 좋은 글과 구절들이 없었다면 전겸익이 어떻게 자신의 문집인 『초학집』110권을 모두 채울 수 있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왕성순 엮음, 『여한십가문초』, ‘홍석주가 동생 헌중에게 답한 글(答舍弟憲仲書)’>

허균 또한 일종의 문장론이라고 할 수 있는 ‘문설(文說)’이라는 글에서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이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모방하거나 답습하지 않고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그들 각자의 글을 썼기 때문에 스스로 일가를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대는 옛사람들의 글을 자세히 보았는가? 좌씨가 쓴 것은 좌씨의 글이고, 장자가 쓴 것은 장자의 글이며, 사마천과 반고가 쓴 것은 사마천과 반고의 글이다. 또한 한유, 유종원, 구양수, 소식이 쓴 것 역시 그들 각자의 글일 뿐이다.

그들은 모방하거나 답습하지 않고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옛 문장가들처럼 모방하거나 답습하지 않는 정신을 배우는 일이다. 나는 지붕 밑에 다시 지붕을 얹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글을 모방하거나 표절했다는 꾸지람을 들을까 두려워할 뿐이다.” <허균,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문설(文說)’>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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