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심재(每心齋)·손암(巽庵) 정약전…“노론의 칼날 피해 기회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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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심재(每心齋)·손암(巽庵) 정약전…“노론의 칼날 피해 기회를 엿보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27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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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78)
▲ 정약전과 저서 『자산어보(茲山魚譜)』.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천전(天全). 우리 역사 최초의 해양생물학(海洋生物學) 서적이자 어류도감(魚類圖鑑)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산어보(茲山魚譜)』의 저자이자 실학자이다.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이기도 하다.

그는 ‘매심재(每心齋)’ 또는 ‘손암(巽庵)’이라는 호로 알려져 있다.

‘매심재’라는 호의 뜻과 의미는 정약용이 지은 ‘매심재기(每心齋기)’라는 글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내 둘째 형님이 고향 집이 있는 초천으로 돌아가서 ‘매심(每心)’이라고 재실의 이름을 짓고 내게 기(記)를 써 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매심(每心)이란 ‘뉘우칠 회(悔)’이다. 나는 뉘우침이 많은 사람이다. 항상 마음에 뉘우침을 새기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재실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매심재(每心齋)’라는 호에 담긴 뉘우침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뉘우침에도 역시 도(道)가 있다. 밥 한 그릇을 비울만한 짧은 순간에 발끈 화를 냈다가 곧바로 뜬 구름이 공중을 지나가는 것처럼 여긴다면 어찌 뉘우치는 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작은 과오라면 조금 뉘우치고 잊어버려도 괜찮다. 그러나 큰 과오라면 고치더라도 매일같이 뉘우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뉘우침이 마음을 길러주는 일은 분뇨가 곡식의 싹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는 것과 같다. 분뇨는 썩은 오물이지만 곡식의 싹을 길러 좋은 양식을 만든다.

뉘우침은 더러운 죄와 잘못으로부터 좋은 덕성을 길러준다. 그 이치는 매한가지다’라고 하였다.”

‘뉘우칠 회(悔)’라는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매(每)’와 ‘심(心)’이 된다. 따라서 ‘매심(每心)’이란 곧 ‘뉘우침’이 되는 것이다.

정약전이 ‘매심재(每心齋)’라는 호를 썼던 때는 정약용이 ‘여유당(與猶堂)’이라는 호를 썼을 때와 거의 일치한다. 즉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노론의 칼날이 자신들을 해치려고 이제나 저제나 기회만 엿보고 있을 때다.

정약용이 ‘신중함과 경계함’에 뜻을 담아 여유당(與猶堂)이라고 한 것처럼 정약전은 ‘뉘우침’에 뜻을 담아 매심재(每心齋)라고 당호를 짓고 자신을 정면으로 겨눈 노론의 칼날을 피해가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정약용과 마찬가지로 정약전 역시 노론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나이 44세가 되는 1801년 신유사옥(辛亥邪獄) 때 정약전에게 내려진 유배형은 정약용보다 더 가혹했다.

정약용은 비록 땅 끝이라고 해도 육지인 강진에 남을 수 있었지만 정약전은 머나먼 절도(絶島) 흑산도로 유배를 가야 했기 때문이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손암(巽庵)’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손암’은 ‘들어간다’는 뜻과 의미를 갖고 있는 『주역』의 ‘손괘(巽卦)’에서 따온 것이다.

이 호에는 하루라도 빨리 바다 가운데 고도(孤島)인 흑산도에서 벗어나 육지로 ‘들어가’ 고향 집을 찾고 싶었던 정약전의 간절한 소망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정약전은 끝내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절해고도(絶海孤島) 흑산도에서 59세의 나이로 한 많은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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