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70년대 어린이날은?…우량아선발대회·시가행진 등 행사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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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70년대 어린이날은?…우량아선발대회·시가행진 등 행사 개최
  • 조선희 기자
  • 승인 2015.05.0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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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회 어린이날을 맞아 시가행진하는 어린이들. <국가기록원 제공>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제93회 어린이날을 맞아 1950~1970년대 펼쳐진 어린이날 기념식, 우량아 선발대회, 전국소년체전 등 총 34건의 관련 기록물을 공개한다고 4일 밝혔다.

어린이날의 유래는 ‘어린이’ 용어의 창시자인 방정환 선생이 주도한 색동회가 주축이 돼 1923년 5월1일 기념행사를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기념행사에서 배포된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의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럽게 하여 주시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어린이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어린이날은 일제 탄압에 의해 1928년부터는 날짜가 5월 첫째 주 일요일로 변경됐고 1937년부터는 기념행사가 금지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광복 이후 1946년 5월5일 어린이날 기념행사가 다시 개최됐으며,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린이날은 5월5일로 고정돼 왔다.

▲ 제35회 어린이날 행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취재하는 어린이 기자단. <국가기록원 제공>

1957년에는 어린이 육성의 기본정신을 밝히고 어린이의 천부인권을 존중하기 위해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제정됐다. 어린이헌장은 보건사회부의 의뢰로 한국동화작가협회에서 작성했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내무·법무·문교·보건사회부 장관 명의로 공포됐다.

전문과 9개의 본문으로 구성된 헌장에는 ‘인간으로서 존중해야 하고 참된 애정으로 교육해야 하며 위험한 때에 맨 먼저 구출해야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1973년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어린이날이 기념일로 포함됐으며 1975년에는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다.

매년 5월5일이 되면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전국에서 열렸다.

1950년대에는 주로 서울운동장, 창경원 등에서 기념식, 운동회, 우량아 선발대회가 개최됐다. 특히 1957년 기념식에는 어린이 기자들의 대통령에 대한 취재 열기가 더해져 참석자들에게 이색 볼거리를 제공했고 창경원에서는 6.25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위한 운동회도 열렸다.

1960~70년대에는 가장행렬, 오토바이 곡예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선을 보였고 어린이회관, 어린이대공원이 개장돼 어린이날은 더욱 풍성한 축제의 한마당이 됐다.

1980년대 이후에는 어린이날 행사가 청와대에서도 열렸다. 청와대에 초청된 어린이들은 대통령과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 1973년 어린이대공원 개원식 장면. <국가기록원 제공>

1972년부터 매년 5~6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라는 구호 아래 전국소년체육대회가 개최돼 어린이 체육의 저변을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1회 대회에서는 전교생이 60여명에 불과한 전남 신안군 외딴 섬의 사치분교 농구팀이 준우승을 차지해 화제를 모았고 선수들은 청와대로 초청 받아 가방 등의 푸짐한 선물을 받았다.

소년체육대회는 수영의 최윤희, 역도의 전병관 등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하며 스포츠 꿈나무의 산실로 자리 잡게 됐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운동장과 놀이동산에서 행사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기록을 통해 어린이들이 우리나라의 보배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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