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으로 표현한 사상과 야망…『호, 조선선비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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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으로 표현한 사상과 야망…『호, 조선선비의 자존심』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6.0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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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봉 정도전(왼쪽부터), 남명 조식, 단원 김홍도.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름을 갖는다.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서는 죽어서까지 회자된다.

어떤 이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어떤 이는 치욕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진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붙여진 이름은 이후 그 사람의 삶에 의해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관통하는 삶의 지향점을 먼저 설정하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이름도 있다. 바로 호(號)다.

부모와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명(名)과 자(字)가 태생적으로 타고난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면 호는 자신의 사상과 철학 등을 담은 삶의 지표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이 같은 호를 통해 사상과 정서를 밝히고 시대의 아픔과 현실개혁의 의지를 드러냈다. 한마디로 조선 선비들에게 호는 자신들만의 정체성의 표현이었다.

한양이 내려다보이는 삼각산(북한산)에서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을 역성혁명을 꿈꾸었던 삼봉 정도전을 비롯해 죽도 정여립, 반계 유형원, 잠곡 김육 등은 지명을 호로 삼았다. 율곡 이이, 연암 박지원의 호 역시 지명에서 따왔다.

반면 퇴계 이황과 초정 박제가 등은 마음에 품은 의지를, 매월당 김시습과 단원 김홍도 등은 기호나 취향을, 표암 강세황과 미수 허목은 자신의 생김새를 호로 사용했다.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는 정적들을 피해 끝까지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했던 조선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은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신중하고(與)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猶)’는 의미의 여유당을 호로 삼아 미래 세대를 위한 저술에 매달렸다.

임금이 모든 신하와 백성의 스승이라 자처한 홍재 이산(정조대왕)과 누구보다도 큰 뜻을 품었던 산림처사 남명 조식, 진정한 선비 정신을 발휘한 사옹 김굉필과 정암 조광조, 만민이 평등하다고 주장했던 교산 허균 등의 호에서도 그들만의 야망이 드러난다.

저자는 호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이른바 사회적 자아를 표상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호를 보면 그의 사람됨과 함께 삶의 행적과 철학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또 다른 거울이라는 것이다.

 

『호, 조선선비의 자존심』(다산초당)은 조선을 뒤흔든 36명 선비들의 호를 통해 그들의 삶과 철학, 내면 깊은 곳의 사상적 고민들까지 재조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태생적 배경에서부터 삶의 과정, 학문의 기틀은 물론 작호의 근거가 되는 방대한 분량의 시문(詩文)까지 옛 문서들을 분석해 현대적으로 풀이하고 재해석했다.

고전·역사연구회 ‘뇌룡재’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 한정주 씨는 인물을 통해 역사를 통찰하는 역사평론가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과 연대기적 접근보다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발간한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 『조선의 거상, 경영을 말하다』, 『영웅격정사-인물비교로 보는 사기와 플루타크영웅전』 등의 책은 저자의 이 같은 작업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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