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지분은 ‘큰손’…의결권은 ‘식물’

비리 경영진 퇴진·대주주 전횡 견제 불가능 구조

2014-03-12     김윤태 기자

주식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이 주식투자를 늘리며 투자기업의 지분을 확대해 가고 있지만 순환출자에 따른 대주주 우호지분에 막혀 사실상 ‘식물 주주’인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 상장사 가운데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87개사의 국민연금 평균 지분율은 7.98%인데 반해 이들 기업의 대주주 및 특수관계 우호지분은 37.01%로 4.6배에 달해 국민연금이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막혀 있는 것이다.

12일 CEO스코어가 30대 그룹 183개 상장사의 국민연금이 투자현황을 조사할 결과 지난 2월말 기준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87개사로 평균평균 지분율은 7.98%, 투자지분 가치는 51조2천4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10%룰’ 해제 이후 국민연금 투자 지분율이 10%를 초과한 기업도 17개에 달했다.

국민연금 지분율이 가장 높은 기업은 12.74%를 보유한 LG상사다. 또 삼성물산(12.71%), CJ제일제당(12.69%), SKC(12.53%), 제일모직(11.63%), LS(11.39%), LG하우시스(11.34%), 롯데푸드(11.32%), LG이노텍(11.22%), 현대건설(11.17%) 등이 톱10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대주주일가 및 우호지분은 37.01%로 국민연금 지분의 4.6배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9.2%의 지분을 가진 롯데하이마트는 대주주일가 및 계열사 우호지분이 65.3%에 달해 7배나 많았고 역시 국민연금이 10.1%의 지분을 갖고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날도 대주주 우호지분이 68.2%로 6.8배나 높았다.

국민연금 지분이 9.2%인 대우인터내셔널도 대주주 지분이 60.3%에 달해 6.5배였고 유니드 역시 국민연금 지분 10.4% 대주주 우호지분 55.7%로 5.3배였다.

국민연금 지분과 대주주 우호지분간 차이가 가장 적은 곳은 제일모직으로 국민연금 11.6%, 대주주 12.2%로 그 격차가 0.6%포인트에 불과했다.

삼성물산도 국민연금 12.7%, 대주주 13.8%로 차이가 1.1%포인트에 그쳤고 SK케미칼(4.4%포인트), 제일기획(8.0%포인트)도 10%포인트 미만의 격차를 보였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의지를 보이며 대주주 일가가 순환출자로 인한 계열사 지분과 특수관계인 등 보이지 않는 우호지분도 대거 확보하고 있어 표 대결로 가면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87개사 중 국민연금이 초대주주인 회사는 8개, 2대 주주인 회사는 38개 등 총 46개로 절반이 넘지만 대주주일가 및 특수관계인들의 우호지분을 넘어서는 경우는 단 한 곳도 없어 물리적인 의결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횡령이나 배임 등 비리 경영진의 퇴진은 물론 대주주의 전횡조차 견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 있는 30대 그룹 87개 상장사 사외이사 291명 중 10년 이상 재임자는 SK케미칼, 한진, 대한항공 등에 각 1명씩 총 3명(1%)에 불과하다.

특히 5년을 쉬었다 사외이사로 다시 선임될 경우 이를 허용하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어 사실상 게열사를 돌며 연임하는 기존의 행태를 원천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출석률 75%(2013년 기준)에 미달하는 사외이사도 LG디스플레이, LG생명과학, LG상사, 삼성물산, 한진 등에 1명씩 5명(1.7%)뿐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연기금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주주가치 훼손을 용납하지 않고 있는데 반해 국민연금은 수십조원의 막대한 국민자본을 투자해 재벌 대주주일가보다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의 독특한 순환출자 구조와 기업 우호지분에 밀려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고 주주가치를 지킬만한 창과 방패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