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바탕으로 시대 변화 따라 뜻을 표현한 유형원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④ 옛것과 새것의 변통과 통섭…법고(法古)와 온고(溫故)의 미학②

2015-10-22     한정주 기자

[한정주=역사평론가] ‘옛것의 형식’을 바탕 삼아 새롭고 창의적인 글을 지은 사례로는 반계 유형원이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형식을 취해 지은 한 편의 글을 읽을 수 있다.

1653년(효종 4년) 나이 32세 겨울 유형원은 “고요하게 거처한 이후에야 안정을 찾을 수 있고 안정이 되어야 깊이 생각할 수도 있다”는 옛사람의 말대로 살 뜻을 세우고, 마침내 선조(先祖)의 오래된 터전과 할아버지 유성민의 전장(田莊)이 있던 전북 부안현 변산의 우반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당시 경기 과천에 살던 유형원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화답하는 글 한 편을 짓고 우반동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돌아가자! 한 해도 저물어 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진실로 스스로 터득하여 정성스럽게 살아간다면 어찌 바깥의 사물이 내게 슬픔이 될 수 있겠나?

예전에 내가 처음 학문을 시작할 때 오로지 성인(聖人)이 되기를 기약하였다. 강물의 맑음과 탁함을 살피며 털끝만큼이라도 잘못이 있을까 근심하였다. 항상 꿈쩍도 하지 않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똑바로 앉아 한 해를 마치느라 아침에 밥 먹고 겨울에 옷 입는 것조차 잊었다.

번잡하게 사물은 아주 많지만 이치란 예외 없이 조그마한 사물까지 드러내어 밝힌다. 분명함과 드러남 사이에서 날아오르기도 하고 내달리기도 한다. 공경(恭敬)과 의리(義理) 둘 다 지키는 것이 덕(德)에 들어가는 문이니 물러나 고요한 곳에 숨어도 나는 어두워지지 않을 것이다.

너의 본성을 잃지 말고, 저 허상을 경계하고, 이치의 혼란을 다스린다. 고금(古今)의 역사를 바르게 증험(證驗)하고 맹자의 글과 안자(顔子: 안회)의 행동에서 진리를 찾아낸다.” 유형원, 『반계잡고(磻溪雜稿)』,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화답하는 글(和陶靖節歸去來辭)

여기에는 비록 고요하고 궁벽한 곳에 몸을 숨기고 살아도 자신의 뜻만은 어두워지거나 가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드높은 기상과 함께 고금의 역사를 연구하고 옛사람이 남긴 경전 속 말과 행동에서 진리를 찾아내 장차 세상에 크게 쓸 대책을 만들겠다는 당당한 포부와 진심어린 심정이 잘 담겨져 있다.

‘귀거래사’를 바탕 삼아 썼지만 유형원만의 독창적인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옛글을 바탕으로 삼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뜻을 글로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