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에서 현대도시로’…서울역사박물관, 1970년대 중후반 서울도심 변천사 발간

2018-03-15     김윤태 기자

서울역사박물관은 한강 이북 지역이 서울의 중심으로 내실을 다져나가는 시기였던 1974년부터 1978년까지의 변화모습을 담은 사진 260여점을 수록한 ‘서울시정사진총서Ⅷ-착실한 전진, 1974-1978②’을 펴냈다.

강남·잠실·송파 등 한강이남 지역 개발현장 사진을 수록해 작년 2월 발간한 ‘서울시정사진총서Ⅶ-가자! 강남으로, 1974~78①’의 후속 발간물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1957∼1995년 서울시정 사진 원본 58만여장을 서울시에서 이관받아 시대·주제별로 정리하고, 그중 대표 사진들을 선별해 2010년부터 ‘서울시정사진기록총서’를 발간하고 있다.

당시 서울 도시계획의 주된 정책적 기반은 서울을 3개의 핵(강북 도심, 영동 도심, 영등포·여의도 도심)으로 묶는 ‘삼핵도시 구상’과 ‘서울의 3대 공간 확보’였다.

3도심을 서울의 중심축으로 삼고, 이를 연결하는 도로망을 확충하는 ‘삼핵도시’와 도심에 부족한 녹지공간·주차공간·도로공간을 확보해 도시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작동시키려는 의도였다. 이에 따라 노후화된 도심지를 대상으로 도심재개발과 재건축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구릉지와 하천변 불량주택들은 철거 후 정비됐다. 종로와 을지로 등 주요 도로는 넓게 확장됐다.

이 시기 서울 도심공간의 재정비와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선진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판자촌이었던 소공동 등에 플라자호텔을 비롯한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1966년 존슨 미국대통령 방한과 1972년 남북대화를 계기로 낡은 판자촌이 즐비한 서울의 중심부가 국제사회에 민낯을 드러내게 됐다. 이를 계기로 1973년 소공·도렴·적선·을지로1가 등 12개 구역이 도심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으며 점차 구역이 확대됐다.

초기에는 다수의 영세한 토지소유주들이 조합을 형성했지만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경험과 재정적인 여건 등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서울시는 법적·행정적 촉진책으로 재개발 사업을 유도했고 점차 재력 있는 개인이나 대기업이 주도하는 재개발이 이뤄졌다. 1976년 준공된 소공동 플라자호텔이 그 첫 사례다.

도로정책은 1960년대 구축됐거나 계획된 도로망의 연장선에서 도심과 도시 외곽지역을 연계하는 주요간선도로 확충에 집중됐다. 대표적으로 이화동~동대문 간 도로를 건설해 서울역을 기점으로 의주로-독립문-중앙청-율곡로-동대문-퇴계로-서울역을 연결하는 ‘제1순환선’이 1975년 완전 개통됐다.

서울의 도로망을 14개의 방사선 도로망으로 계획하고, 이를 연결하는 도로건설사업이 주를 이루었다. 또 급격히 늘어나는 교통량으로 인해 주요 간선도로에 교통정체가 심해지자 종로·신문로·을지로·의주로 등 도심부 간선도로를 확장했다.

그 결과 1971년부터 1979년간 건설된 도로연장은 1270km이며 1971년 당시 9.56%의 서울시 도로율은 1979년 14.5%로 급격히 늘어났다.

서울시는 1975년부터 한양도성(서울성곽)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고 대대적인 서울성곽의 보수·복원공사를 추진해 역사도시 서울 정비에도 나섰다.

시는 한양도성 보수·복원 과정에서 실행조직을 확충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하는 등 정책적 지원을 통해 한양도성과 연결된 탕춘대성과 홍지문, 오간수문, 세검정 등을 복원했다.

이와 함께 백제시기 왕성인 풍납토성도 보수했다. 전통한옥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1976년 한옥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17채의 한옥을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지정했다. 또한 서울역사에 대한 정리작업도 실시해 1978년 ‘서울600년사’ 1권이 완성됐다.

‘서울시정사진총서Ⅷ-착실한 전진, 1974-1978②’는 서울도서관에서 도서 또는 전자책으로 열람할 수 있으며 시민청 서울책방에서 구매(가격 3만원)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