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경영일선 퇴진?…일가족 구속도 배제 못해

조 회장 홀로 퇴진 아니라 일가 모두 퇴진해야 하는 상황…조 회장의 선택은?

2018-04-24     한정곤 기자

조 회장 홀로 퇴진 아니라 일가 모두 퇴진해야 하는 상황…조 회장의 선택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로 촉발된 한진그룹의 위기가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관계 당국의 조사가 단순히 조 전무의 폭행 혐의에 국한되지 않고 총수 일가의 범법 행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24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경찰과 세관은 최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자택과 대한항공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 분량의 휴대전화, 태블릿PC, 외장하드 등의 증거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조 회장 자택에서는 일가족의 상습·조직적인 밀수·탈세 혐의를 입증할 명품들도 확보했다.

조 전무의 ‘물컵 갑질’과 총수 일가의 밀수·탈세 혐의에 대한 조사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한진그룹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조양호 회장이 지난 22일 긴급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이 같은 압박에 다급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조 전무의 ‘물컵 갑질’ 사태가 알려진 지 10일 만에 나온 사과문에서 조 회장은 조현민 전무를 포함해 ‘땅콩 회항’으로 집행유예 중인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까지 사퇴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또한 전문경영인 부회장직을 신설해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를 보임하고 그룹 차원의 준법위원회를 구성해 이튿날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을 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여론을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씨의 ‘갑질 폭행’ 동영상이 공개되고 대한항공 임직원들이 나서 조 회장 일가의 각종 ‘만행’에 대한 폭로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재계와 한진그룹 안팎에서는 현재 상황에서 조 회장 일가에 대한 사법처리 수순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찰의 압수물 분석이 끝나면 조 전무를 비롯한 총수 일가 소환이 이어지고 혐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조 회장 구속이라는 최악의 사태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 선언을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다. 특히 한진그룹 일부에서는 조 회장의 퇴진은 지난 ‘사과문’ 발표 당시 포함됐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허울뿐인 전문경영인 부회장직이 아니라 총수일가의 전면 퇴진과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경찰과 관세청이 조 회장 일가의 범범 행위를 확인할 경우 조 회장의 퇴진은 불가피하다. 이때 대한항공 조직차원의 비리 개입이 밝혀진다면 대한항공은 면허 정지 등 ‘국적기 자격 박탈’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데에 임직원들은 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현행 항공사업법에서는 항공운송사업자 면허 취소·정지 요건 중 하나로 ‘국가 안전이나 사회 안녕질서에 위해를 끼칠 현저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포함돼 있다. 조 회장 일가의 행위가 ‘사회 안녕질서에 위해를 끼칠 현저한 사유’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조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은 과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퇴진처럼 쉽지만은 않다. 일가족이 그룹 경영에 관여하고 전문경영인들이 계열사 사장에 포진해 있었던 삼성그룹과 달리 한진그룹은 대한항공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은 모두 조 회장과 자녀들이 경영을 좌지우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다 할 전문경영인도 찾기 힘들다.

특히 조 회장 홀로 퇴진이 아니라 일가가 모두 퇴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조 회장의 선택은 막다른 골목까지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한진그룹 사태와 같이 총수일가가 한꺼번에 연루된 사건은 우리 기업사에서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싶다”면서 “총수 퇴진이라는 카드로 돌파했던 지금까지의 전례와 달리 한진그룹의 앞날은 예측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