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鴨鷗亭) 한명회…갈매기 대신 권력을 벗했던 권신의 삶

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⑭

2015-02-13     한정주 기자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자준(子濬). 세조의 왕위 찬탈을 실질적으로 설계하고 지휘한 장본인이다.

세조 즉위 이후 성종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두 딸을 모두 왕비(王妃)로 만들고 세 차례나 영의정에 오른 권신(權臣)이다.

‘압구(狎驅)’는 ‘갈매기(驅)와 친압(親狎: 친하게 지내다)한다’는 말이다. ‘세상일을 모두 잊고 강가에서 갈매기를 벗하며 산다’는 뜻으로 한명회가 한강 가에 세운 정자인 ‘압구정(狎鷗亭)’에서 취한 호다.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정치가 한기(韓琦)는 백성에게 헌신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성품이 겸손해 명성이 높았다. 그의 집 이름이 ‘압구정’이었는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대문호 구양수((歐陽修)가 그 뜻을 기려 시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나라와 백성에 헌신하는 한편으로 자연을 벗 삼아 한가롭게 즐기라는 위로와 당부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한명회는 한기와 구양수의 옛 이야기가 담겨있는 ‘압구정’이라는 이름을 명(明)나라의 한림학사 예겸(倪謙)에게 직접 받아와서 정자에 걸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그러나 권력욕으로 가득 찬 권신 한명회의 삶은 ‘압구정’이라는 이름만 취했을 뿐 거기에 담긴 뜻과는 거리가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