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慵齋) 성현…“세속적인 삶과 거리 두며 살겠다”

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㉔

2015-02-26     한정주 기자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경숙(磬叔). 음악과 음률에 박식해 성종의 명을 받아 당시까지 전해온 음악 이론과 각종 음률과 악보 및 악기를 총망라한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간행했다.

또한 고려 때부터 성종 때까지의 풍속, 지리, 역사, 문물, 제도, 음악, 문학, 인물, 설화 등을 집대성한 『용재총화(慵齋叢話)』를 저술했다.

‘용재(慵齋)’라는 호를 썼던 그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이야기꾼답게 ‘게으름을 조롱함(嘲慵)’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우의적이고 역설적 표현 방법으로-명예와 이욕을 좇아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속적인 삶과 거리를 두며 살겠다는 뜻으로 ‘게으를 용(慵)’자를 취해 호로 삼은 사연을 기록해 놓았다.

명예와 이욕을 좇는 것에 게으른 자신을 ‘용재(慵齋)’라는 호 속에 담았던 것이다.

또한 그는 ‘부휴자전(浮休子傳)’이라는 글을 통해 “세상에 태어나서 산다는 것은 마치 ‘둥둥 떠 있는 것(浮)’과 같고 죽어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마치 ‘휴식하는 것(休)’과 같다”고 하면서 ‘둥둥 떠 있는 것과 같은 삶이 뭐가 영화(榮華)롭고 휴식하는 것과 같은 죽음이 뭐가 슬프겠는가’라고 했다.

이렇듯 삶도 특별한 가치가 없고, 죽음 또한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탈속(脫俗)의 철학이 담겨 있는 성현의 호가 ‘부휴자(浮休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