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小痴) 허련…“작게 혹은 조금 어리석다”

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91)

2015-05-13     한정주 기자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마힐(摩詰).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시(詩)·서(書)·화(畵)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불렸다.

특히 김정희가 “압록강 동쪽으로 소치를 따를만한 화가는 없다”라고 할 만큼 그림 솜씨가 탁월했다.

스승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1856년 고향인 진도로 낙향하여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짓고 살면서 ‘남종화(南宗畵)’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그의 화풍은 아들 허형, 손자 허건, 방계 친족인 허백련으로 계승되어 현대 한국화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호남화단을 이루었다.

‘작게 혹은 조금 어리석다’는 뜻을 담고 있는 ‘소치(小痴)’라는 호는 추사 김정희가 지어준 것인데, 중국 원(元)나라 말기 남종문인화의 4대가(四大家: 황공망·오진·예찬·왕몽) 중의 한 사람인 황공망의 호 대치(大痴)에 빗대어 지어주었다고 한다.

진도의 ‘운림산방’ 역시 이들 중 한 사람인 예찬의 아호인 ‘운림(雲林)’을 취해 지은 것만 보아도 허련이 평생 추구했던 화풍의 미학이 어느 곳에 있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