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봉화(金鳳花)…“진실로 슬퍼하는 사람을 볼 때 저절로 슬퍼지는 것”

[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01)

2015-05-31     한정주 기자

[한정주=역사평론가] 약초 밭두둑 난간의 금봉화(金鳳花)가 새벽 비에 붉은 색깔이 가셔버렸다.

어린 계집종이 꽃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세속의 먼지에서 벗어난 통달한 선비가 이 모습을 보고 눈동자를 활짝 열며 말했다.

“패왕(覇王) 항우가 우미인(虞美人)과 울며 이별할 때 바로 이와 같았을 것이다.”(재번역)

藥欄干畔 金鳳花爲曉雨〇紅 小婢子攀花而泣 有達觀士夫 開眼孔曰 項覇王泣別虞兮時 政如是. 『이목구심서 2』

동서양의 고전을 통틀어 보아도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겨룰 만한 책이 몇 권이나 될까? 『사기』의 문장 중 명문 아닌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마는 이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명문 중의 명문은 다름 아닌 ‘항우본기(項羽本紀)’다.

그렇다면 ‘항우본기’의 클라이맥스는 어느 대목일까? 그것은 항우가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 평생에 걸쳐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 우미인(虞美人)과 이별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초패왕 항우가 우희(虞姬), 즉 우미인과 이별한다는 뜻의 ‘패왕별희(覇王別姬)’라는 고사성어가 생겼을 만큼 유명하다. 오늘날에도 중국의 전통 악극인 경극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이야기다.

‘패왕별희’가 이토록 사랑받은 까닭은 무엇일까? 사랑과 이별의 진실함과 애절함이 이보다 더한 고사가 없기 때문이다.

금봉화(金鳳花)는 봉선화다. 봉선화가 활짝 피면 여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손톱과 발톱에 봉선화 물을 들인다. 그만큼 사랑받는 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비에 봉선화의 붉은 기운이 사라져 버렸다. 집안의 어린 계집종이 봉선화를 부여잡고 훌쩍거리는 모습이 마치 항우와 우미인이 이별할 때 그러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애틋하고 애절하다.

나는 인간이 지닌 가장 가치 있는 덕목 중 하나가 ‘공감(共感)’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지극한 슬픔에 슬퍼하고, 기쁨에 기뻐하고, 분노에 분노할 줄 모른다면 나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떠들어도 그 인간은 반 푼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신분 질서로 볼 때 어린 계집종은 지극히 천한 미물에 불과하다. 그런데 봉선화와 헤어지는 한 순간을 슬퍼하는 어린 계집종을 지켜보면서 이덕무는 지극히 높고 귀한 초패왕과 우희의 가슴 절절한 이별 장면을 떠올린다.

진실로 슬퍼하는 사람을 볼 때 저절로 슬퍼지는 것, 그것이 바로 공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