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명의 뿌리…주택 건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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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명의 뿌리…주택 건축의 역사
  • 조선희 기자
  • 승인 2014.03.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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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19세기는 산업혁명의 결과 부르주아가 등장하면서 아파트는 이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도시주거이자 투자의 대상이 되었다.
의식주라는 단어에서도 보듯이 집은 인간을 담는 그릇의 하나다. 주택 그리고 주택이 모여 생겨난 마을·도시·국가는 인간의 생물학적 삶, 사회적 삶을 형성하는 범위가 된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주거형태 ‘주택’은 문명·문화를 읽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인류는 수많은 형태의 ‘주택’과 그 집합체인 ‘도시’를 만들어왔다. 유럽만 보자면 도무스, 빌라, 박공 주택, 상가 주택, 탑 주택, 아케이드 주택, 오텔, 성채, 컨트리 하우스, 광장주거, 아파트 하우스, 테라스 하우스 등 그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 구경에서 한 발 나아가 이 건물 유형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들여다보면 가족, 계층, 공적·사적 영역, 젠더, 부동산 개발, 도시의 전통, 지배층의 정체성과 과시 경쟁 등 실로 다양한 맥락을 읽는 즐거움과 통찰이 따라온다. 공공건물도 이런 주제와 연관 있지만 주택보다 그 포괄성에서 매우 약하다.

일반 건축사는 보통 공공건물을 대상으로 각 시대의 첨단 양식을 추적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런 시각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일상생활 등의 사회현상이 건축에 스며든 내용이다. 이런 집합체를 읽어낼 수 있는 건물은 주택밖에 없다.

도시는 국가와 계급을 배치하고 형성하는 공간이며 주택은 도시를 형성한 기본요소였다. 다양한 인문사회학적 통합과 해석을 통해 수천 년 동안 유럽의 주택, 도시, 공간, 그것을 형성한 사회집단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공공생활을 중시한 온후한 기후의 고대 그리스에서는 일부 계층에겐 주택은 잠만 자는 곳인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의 생활이 길거리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집합주택, 공동 임대주택(시노이키아)이 처음 생겨난 곳도 그리스였다. 이 시대에 이미 공동임대주택이 있었던 것이다.

또 주택은 밖을 향하는가(공적 영역), 안을 향하는가(사적 영역)에 따라서도 시대별로 유형이 달라졌다.

로마는 도무스(라틴어로 ‘집’이라는 뜻)의 시대로 그리스의 열주랑 주택을 이어받아 더 풍성한 문화적 요소와 결합해 발전시켰다. 어떤 시대나 계급·계층이 형성되면서 주거 형태도 다양해진다. 중세에 오면 영주나 귀족 본거지인 성채, 봉건제의 중심인 장원 주택, 도시주거가 나타난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팔라초와 오텔을 통해 상류층 주거와 건축가들의 호화로운 건축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프랑스의 오텔과 영국의 컨트리 하우스는 초창기에는 이탈리아 건축을 모방하면서 생겨난 이 두 나라의 건축이 어떻게 자국만의 건축양식을 창출하는 노력과 결과로 이어졌는지 잘 보여준다.

여기에 공공건축보다는 주택이 있었다. 주택과 건축은 이렇게 민족과 국가 정체성 형성으로도 이어졌다.

17~18세기는 무엇보다 국가, 귀족·부르주아 주도의 부동산 개발의 시대였다. 이때부터 유럽의 광장은 특히 국가(왕실) 주도하에 건축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파리의 19세기는 무엇보다 아파트의 시대였다. 산업혁명의 결과 부르주아가 등장하면서 아파트는 이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도시주거이자 투자의 대상이 되었다.

현대 한국에서도 ‘아파트’는 도시 중산층의 정체성이자 투자의 대상이며 욕망의 대상이다. 오스망 재개발 이후 파리의 아파트는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형식이자 도시 아이콘이 되었다.

19세기 파리의 도시 발전을 이끈 요인을 역사가들이 불바르와 카페에 국한한 것과는 중요한 차이다. 건축과 주택을 볼 때 파악되는 중요한 지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19세기 파리는 아파트를 빼고는 성립될 수 없다. 19세기 파리 아파트의 전성기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경제적 배경은 바로 부르주아의 부동산 투자였다.

반면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에서는 부르주아가 런던 시내에 직접 공장을 짓고 물건을 생산해서 부를 축적했다. 파리에서는 이것을 아파트가 대신했다.

 
19세기 런던 시내가 공장으로 넘쳐났다면 19세기 파리 시내는 아파트로 넘쳐났다. 아파트야말로 파리를 근대적 대도시로 만든 주역이었다. 유럽의 근대는 그야말로 주택 건설과 도시 확장, 산업과 문화, 일상의 역학이 뒤엉켜 탄생되었다.

유럽문명의 주류를 이끈 주요 건축의 패턴은 위에서 살펴보듯 바로 이들 세 나라에서 가장 풍부하게 생산, 농축, 집약되었다.

우리가 흔히 ‘유럽의 주택’이라고 할 때는 바로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이 세 나라의 ‘패턴’을 가리키며, 이 ‘패턴’이 지역·나라마다 다른 문화적 영향과 어우러져 다양한 변형의 양식을 만들어냈다.

유럽의 전통은 현대 주택을 이해하는 데 선례 역할을 한다. 서양은 형식주의 전통이 강하기 때문이다. 현대 주택 역시 과거에 형성된 형식 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주택 양식이 바로 현대의 우리가 사는 공간을 만들었으며 앞으로 우리가 생각할 과제 역시 던져준다.

예를 들어 파리의 아파트는 현대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투기의 성격이 짙었지만 나름대로 심미적 가치를 실어내려 노력했으며 파리라는 도시의 미학자원의 하나로 정의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의 파리는 바로 그 노력의 산물이다. 오로지 투기에만 매몰되어 있는 우리에게는 생각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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