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妄想)에서 탈출구와 활력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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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妄想)에서 탈출구와 활력을 찾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7.2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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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② 기묘(奇妙)와 기궤(奇詭)의 미학⑨
 

[한정주=역사평론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벽(癖)’에 대한 예찬 못지않게 ‘망상(妄想)’을 예찬하며 오히려 망상 속에서 절망으로 가득한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와 활력을 찾는다는 이학규(1770년(영조 46년)~1835년(헌종 1년))의 글 또한 기이한 발상과 기궤한 사고가 단연 돋보이는 독창적인 글이다.

이학규는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잃고 외가에서 성장하면서 외할아버지인 이용휴와 외삼촌인 이가환의 학문과 문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비록 이가환이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맞은 이후 궁핍하고 불운한 삶을 살았지만 평생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의 독특한 문기(文氣)와 남달랐던 문풍(文風)을 좇아 글을 쓰는 것을 즐거워했다.

성리학적 세계와 사유에서는 마음을 제멋대로 풀어놓는 상태를 일컫는 ‘방심(放心)’과 ‘잡념(雜念)’과 ‘망상(妄想)’과 ‘상념(想念)’ 등을 수기(修己)와 수양(修養)의 가장 해로운 적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율곡 이이는 『성학집요(聖學輯要)』 ‘수기(修己)’ 편에서 “배움에 정진하는 사람이 노력해도 가장 효과를 얻기 어려운 것이 뜬구름과 같은 생각을 다스리는 것이다. 대개 사악한 생각이란 비록 마음속 깊이 가득 차 있다고 하더라도 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성실하게 다지기만 하면 다스리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오직 뜬 구름처럼 떠도는 생각만은 아무 일이 없을 때에도 불쑥 일어났다가 문득 사라져버려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토록 뜻을 성실하게 지녔던 사마온공(사마광) 또한 오히려 마음이 어지러움을 근심했는데 하물며 배움에 처음 들어서는 사람이야 어떠하겠는가?

배우지 않은 사람은 마음을 놓아버리고 제멋대로 자신을 내맡겨서 그와 같은 생각이 뜬구름과 같은 생각이라는 사실조차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은 고요히 앉아서 자신의 마음을 거두어들인 다음에야 뜬구름과 같은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런데 ‘망상’을 예찬한다니! 참으로 성리학적 정신세계에 지배당했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기이하고 기궤한 게 보였을 글이다.

“우리들 같은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오직 이 망상(妄想) 한 가지가 있을 뿐이지요. 지금 세상에서 우리들처럼 남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없고 세상에 바라는 것도 없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오.

그런데 이 한 가닥 망상만은 홀연히 하늘 높이 올라가기도 하고 홀연히 저승 세계를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크게는 드넓은 천하 세계를 떠돌고, 작게는 작은 터럭 끝을 헤매기도 하지요. 망상이 모여들면 쇠털처럼 빽빽하고, 변화를 할라치면 공중의 꽃보다도 빠르게 변한답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모습은 마치 잠자리가 물 위를 살짝 스치듯 날아가는 듯하고, 아무리 보내도 다시 돌아오는 모습은 주마등이 빙글빙글 도는 것과 같지요.

밤중에 머리를 숙이고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결코 한 시각도 떠나지를 않다오. 대개 나의 이 마음은 지극히 활발한 것이어서 타오르는 불꽃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저 불꽃이라는 것은 어디에라도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의 존재가 없는 법이오. 그러니 나무 끝에 붙지 않으면 기름 심지에 붙기 마련이오. 나무 끝과 기름 심지를 벗어나면 그 순간 불꽃은 없게 된다오. 옛날 가난하고 늙은 선비 한 분이 있었소. 그 선비는 늘 이러한 이야기를 즐겨 하였지요.

‘나는 밤마다 잠 한숨 붙이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집 뒷마당에 땅을 파고 샘을 뚫는데 갑자기 괭이 끝이 들어가지 않고 땡그렁 하는 소리가 났지요. 가만히 살펴보니 오래된 항아리의 뚜껑이더군요. 있는 힘을 다해 뚜껑을 열어보니 그 항아리에 백금(白金)이 가득 있는데 용광로에서 막 꺼낸 듯이 반짝반짝 빛이 났더랍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아무도 없기에 서둘러 처자식을 불렀지요. 그리고 백금을 밀실로 옮겨놓고 계산을 해보니 백금의 무게가 모두 3~4만 냥은 족히 되었지요. 그래서 오늘 한두 덩이를 내다 팔고, 다음날 또 서너 덩이를 팔고, 이렇게 여러 달에 걸쳐 팔았답니다.

이번 달에는 빚을 다 갚고, 그 다음 달에는 아들에게 일러 아내를 맞아들이라고 하였지요. 한 해가 되기도 전에 전답, 누대, 노비, 소, 말, 의복, 음식 등이 모두 갖추어져서 어엿한 부잣집 영감이 되었답니다. 그 즐거움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겠지요.’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실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아! 이 사람은 망상을 깨뜨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니 불쌍히 여길 일이지 비웃을 일은 아니지요. 그리고 자기 스스로 망상을 따라 실행하는 자는 미친 사내이고, 자기 입으로 망상을 말하는 자는 바보입니다.

통달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한 가닥 망상이 생기면 곧바로 하나의 바른 생각으로 그 망상을 물리치고, 두 가닥 망상이 생기면 또 다시 두 가닥 바른 생각으로 그 망상을 물리친답니다. 맹자가 말한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망상을 따라 실행하는 자를 가리키고,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선행을 쌓는 자’는 망상을 물리친 성인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이 마음 속에 영원히 이 한 가닥 망상이 없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타오르는 불꽃이 붙어 있던 관솔가지와 등잔 심지를 떠나는 것과 같답니다. 그러한 사람은 말라 죽는 나무이며, 불씨가 죽어버린 재입니다. 결코 내 가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물건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학규, ‘아무개에게 답하다(答某人)’ (안대회 지음,『고전 산문 산책』, 휴머니스트, 2008.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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