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사람은 단지 마시고 먹고 잠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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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사람은 단지 마시고 먹고 잠잘 뿐이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7.30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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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40)

[한정주 역사평론가] 지영(智永: 남북조(南北朝) 때 진(陳)나라 영흔사(永欣寺)에 있었던 중으로 글씨를 잘 썼다)은 『천자문(千字文)』을 8백 번이나 썼고, 홍경로(洪景盧)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세 번이나 등사하였다.

호담암(胡澹菴)이 양구산(楊龜山)을 보자 구산이 팔뚝을 들어 보이며 말하기를 “나의 이 팔뚝이 책상에서 떠나지 않은 지 30년이 된 연후에 도(道)에 나아감이 있었다” 하였고, 장무구(張無垢)가 횡포(橫浦)로 귀양 가서 매일 새벽에 책을 안고 창 아래에 서서 14년을 읽었는데 돌 위에 두 발의 자국이 은연하였다.

우리나라 고두곡(高杜谷) 응척(高應陟)이 젊었을 때에 직접 사면이 모두 벽이고 두 구멍만 있는 집을 지었는데 그 구멍 중 하나는 음식을 넣는 곳이고 하나는 바깥사람과 수답(酬答)하는 곳이다. 『중용(中庸)』·『대학(大學)』을 그 속에서 읽은 지 3년 만에 나왔다.

조중봉(趙重峰) 헌(憲)이 일생 동안 잠이 없어 밤에 읽고 낮에는 일을 하였다. 밭두둑에 나무를 걸쳐 놓고 책을 펴놓고는 소를 몰고 오가면서 섭렵(涉獵)하였다. 밤에는 또 어머니 방에 넣는 불빛에 책을 보았으니 옛사람은 공부를 이처럼 열심히 하여 남보다 크게 앞섰다.

우리 같은 무리는 다만 마시고 먹고 잠잘 뿐이다.

智永 寫千文八百本 洪景盧 手鈔資治通鑑三過 胡澹菴 見楊龜山 龜山擧肘示之曰 吾此肘不離案三十年 然後於道有進 張無垢 謫橫浦 每日昧爽 輒抱書立窻下而讀十四年 石上雙趺之跡隱然 我國高杜谷應陟 少時 手結一屋 四面皆壁 只有二穴 一通飮食 一與外人酬答 讀中庸,大學於其中 三年廼出 趙重峯憲 一生無睡 夜讀而晝耕田 田畔架木支書 叱牛來往 必涉獵 夜又爇火母房 映薪覽閱 古人修業 如是猛進 大過於人 如吾輩者 只飮啖昏睡而已. 『이목구심서 1』

독서의 방법 역시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렸다고 고집해서는 안 된다.

정독(精讀)과 반복(反復)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 권을 읽더라도 정확하고 정밀하게 읽어야 한다. 내용을 파악하고 이치를 깨우칠 때까지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그러나 다독(多讀)과 박학(博學)도 하나의 방법이다. 수많은 책을 두루 널리 읽고 온갖 분야의 책을 훑듯이 읽다가 보면 어느 순간 문리(文理)가 트이게 된다. 산을 오를 때 한 길만을 통해 정상에 오를 수 있지만 또한 수백 수천 갈래의 길을 두루 거쳐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떤 것이 더 좋은 방법일까? 정해진 답은 없다. 각자의 취향과 기호, 재능과 역량에 맡길 뿐이다.

다만 나의 경우는 젊은 시절, 즉 20~30대에는 다독과 박학보다는 정독과 반복에 더 무게를 두었고, 40세 이후로는 정독과 반복보다는 다독과 박학에 더 무게를 두었다.

20〜30대에는 정확하게 보고 되풀이해서 읽지 않으면 책의 내용과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반면 40세 이후에는 구태여 정밀하게 보고 반복해서 읽지 않아도 대개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저자의 뜻을 파악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다독과 박학에 무게를 두어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물론 지금도 정독하고 반복해서 읽어야 할 책 역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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