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옆구리를 찢고 나오는 것 같은 놀라운 글을 썼던 노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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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옆구리를 찢고 나오는 것 같은 놀라운 글을 썼던 노긍”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8.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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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② 기묘(奇妙)와 기궤(奇詭)의 미학⑩
 

[한정주=역사평론가] 이학규보다 한 세대를 앞서 살았던 노긍(1738년(영조 14년)~1790년(정조 14년))이라는 문인의 ‘상해(想解: 망상을 해석하다)’라는 제목의 글 역시 이학규와 비슷한 상황과 맥락에서 망상과 잡념으로 소일하는 삶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유배지로 내쫓겨 망상과 상념밖에 할 일이 없는 자신의 생활을 그냥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 지점에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어느 기이한 문인의 존재 이유와 존재 가치가 자리하고 있다.

유배지에서조차 사대부의 체면과 도학자(성리학자)의 위엄 속에 자신의 본마음과 참모습을 감추려고 갖은 위선을 떤 이들과 비교해보면 인간적이어도 너무 인간적인 모습이지 않은가?

눈이 한 개밖에 없는 사람들이 온 세상을 차지하면 눈이 두 개인 사람은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게 마련이다. 비슷한 이치로 위선으로 자신의 마음과 모습을 감춘 사람들이 세상 천지에 가득차면 자신의 마음과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은 기이하고 기궤하다는 비난과 혹평을 듣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망상을 예찬하고 긍정한 이학규나 노긍은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기이하고 기궤한 사람이 되어 버린 인간적이어도 너무나 인간적인 이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변방 고을에서 죄를 짓고 복역(服役)하느라 천신만고를 골고루 겪지 않은 것이 없었다. 활처럼 몸을 구부려 자는 밤이면 밤마다 망상이 생겨 온갖 잡념이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번져 얼토당토않은 갖가지 일이 떠올랐다.

잡념은 이런 데까지 번졌다. ‘어찌해야 사면을 받아 돌아갈까?’, ‘돌아간다면 어떻게 고향을 찾아가지?’, ‘가는 도중에는 무엇으로 견디나?’, ‘고향에 도착하여 문을 들어설 때는 어떻게 할까?’, ‘부모님과 죽은 마누라 무덤을 찾아가선 어떻게 하지?’, ‘친척들과 친구들을 찾아보고 빙 둘러앉아서는 무슨 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채소는 어떻게 심으며 농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잡념은 더더욱 작은 일에도 이르렀다. ‘어린 자식 놈들 서캐와 이는 내가 손수 빗질해서 잡고, 곰팡이 피고 물에 젖은 서책일랑 뜰에서 볕에 말려야지.’

세상 사람들이 응당 해야 할 일체의 일들이 몽땅 가슴으로 빠짐없이 찾아드는 것이었다. 그렇듯이 몸을 뒤척이다보면 창은 훤히 밝아오고 일어나면 도무지 실현된 것이라곤 전혀 없이 위원군(渭原郡: 평안북도 소재 고을)에서 귀양살이하며 걸식하는 멀쩡한 사내일 뿐이었다.

‘밤사이에 떠올랐던 생각은 어느 곳으로 돌아갔으며 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 저도 모르는 새 절로 실소가 터져 나와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오늘밤에도 새벽녘이면 찌그러진 초가집 속에서 다시 몇 천 몇 만 명의 사람이 다시 몇 천 몇 만 가지의 잡념을 일으켜 이 세계를 가득 메우겠지. 속으로는 이익을 챙길 생각을 하고 겉으로는 명예를 거머쥘 생각을 하겠지. 귀한 몸이 되어 한 몸에 장군과 재상을 겸직할 생각을 하고 부자가 되어 재산이 왕공(王公)에 버금가리라는 생각을 하겠지.

그뿐만이 아니야. 첩들고 뒷방을 가득 채울 생각도 할 테고 아들 손자가 집안에 넘쳐날 생각도 할 것이며, 또 자기를 내세워 남을 거꾸러뜨리려는 생각도 하고 남을 밀쳐내 원한을 보복하려는 생각도 하리라. 원래 사람이란 그 누구도 한 가지 생각이 없는 자가 없는 법이잖은가.

하지만 그 사람도 창이 훤하게 밝아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도무지 실현된 것이라곤 전혀 없고, 가난한 자는 도로 가난한 자로 돌아오고, 천한 자는 천한 자로 돌아오며, 이가(李家)는 본래의 이가로 돌아오고, 장가(張家)는 도로 본래의 장가로 돌아가는 것이다.

전생에 쌓아놓은 근기(根基)를 현세에 받아쓴다고들 한다. 조화옹(造化翁)은 목이 뻣뻣하여 눈곱만치도 인정을 봐주지 않는다. 인간의 운명을 한번 결정지어놓은 다음에는 다시금 고쳐서 두 번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법이란 아예 없다.

네놈이 아무리 이리 생각하고 저리 궁리하며, 요렇게 잔꾀를 부리고 저렇게 수단을 부려서 10만8천 리를 근두운(觔斗雲)을 타고 날아다니는 손오공의 신통한 기량을 발휘한다고 쳐보자. 아무리 날뛰어도 부처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무리 뚫고 나가도 분수 밖으로는 나가지 못한다. 도리 없이 오늘도 또 제 본분에 맞는 밥을 씹고 제 본때에 어울리는 옷가지를 걸친다.

그러다가 염라대왕이 보낸 저승 차사(差使)가 명부를 소지하고 이르면 즉각 길에 올라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수천 가지 생각, 수만 가지 상념을 뒤에다 남겨두고 머리를 수그리고 그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제게는 하고많은 숙원이 있지마는 채 생각조차 못했사오니 제발 기한을 늦춰주기 바라옵니다’라는 말을 끝내 입 밖에 내지도 못한 채 말이다.

쯧쯧쯧! 이러한 행로가 정녕 인간이 필경 맞닥뜨릴 종착지다. 인생이 그러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미리 짐을 꾸려 할 일을 줄이는 방법이다.” 노긍, ‘상해(想解)’ (안대회 지음,『고전 산문 산책』, 휴머니스트, 2008.에서 인용)

특히 이가환은 노긍의 불운한 삶과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기록한 ‘노한원묘지명(盧漢源墓誌銘)’에서 말하기를 “형식에 얽매이는 더러운 습관 일체를 배제하고서 하늘의 복판을 뚫고 나오는 듯, 달의 옆구리를 찢고 나오는 것 같은 놀라운 글을 썼다”고 했다.

기묘와 기궤의 문장 미학을 추구해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던 이가환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을 만큼 노긍의 글은 기이하고 놀라웠던 것이다.

“한원(漢源: 노긍의 자(字))의 문장은 배포가 두둑했고 눈빛은 옥 같았으며 붓을 휘두르는 것은 송나라의 도끼와 노나라의 창과 같이 더할 수 없이 정교하였다. 그는 세상의 몽매하고 촌스러우며 형식에 얽매이는 더러운 습관 일체를 배제하고서 하늘의 복판을 뚫고 나오는 듯, 달의 옆구리를 찢고 나오는 것 같은 놀라운 글을 썼다.

문장을 평할 때에는 인정이나 친분에 구애받지 않고 명성이나 위세를 배제한 채 온갖 법도를 가지고 정성을 다해 말해 주었다. 이 때문에 둥글거나 굽거나 바른 실상이 그의 평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명성이 한 세대를 풍미했으나 꺼리는 자들이 떠들어 대는 바람에 죄에 걸렸다. 하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이가환, 『금대집』, ‘노한원묘지명(盧漢源墓誌銘)’ (이가환 지음, 박동욱 옮김,『금대집』, 한국고전번역원, 2014.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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