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眞情)의 발로(發露)…“갓난아이에게 물어보아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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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眞情)의 발로(發露)…“갓난아이에게 물어보아야 할 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8.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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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46)
 

[한정주 역사평론가] 진정(眞情)의 발로(發露)는 마치 고철(古鐵)이 활기차게 못에서 뛰어오르고, 봄철 죽순(竹筍)이 성낸 듯이 흙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다.

거짓으로 꾸민 감정은 마치 먹(墨)을 매끄럽고 넓은 돌에 바르고, 맑은 물에 기름이 뜨는 것과 같다.

칠정(七情) 가운데 슬픔이 가장 직접적으로 발로하여 거짓으로 꾸미기 어려운 것이다. 슬픔이 아주 지극하여 통곡이 되면 그 지성(至誠)스러운 마음을 은폐할 수 없다.

그러한 까닭에 진정으로 우는 울음소리는 뼈 속에 사무치게 되는 반면 거짓으로 꾸며 우는 울음소리는 털 밖으로 뜨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세상만사의 진짜와 가짜를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재번역)

眞情之發 如古鐵活躍池 春筍怒出土 假情之餙 如墨塗平滑石 油泛淸徹水 七情之中 哀尤直發難欺者也 哀之甚至於哭 則其至誠不可遏 是故 眞哭骨中透 假哭毛上浮 萬事之眞假 可類推也. 『이목구심서 2』

‘진정(眞情)의 발로(發露)’,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거짓으로 꾸미지 않는 참된 감정’을 세상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박지원의 청나라 여행기인 『열하일기(熱河日記)』의 「도강록(渡江錄)」 7월8일(갑신일)자에 실려 있는 이른바 ‘호곡장론(好哭場論)’이 읽어볼 만하다.

조선을 벗어나 요동벌판을 처음 본 박지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한바탕 울 만한 곳이로구나! 가히 한 바탕 울 만한 곳이야!”

그때 옆에 있던 정 진사(鄭進士)라는 이가 박지원에게 “하늘과 땅 사이에 탁 트여 끝없이 펼쳐진 경계를 보고 갑자기 통곡을 생각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박지원은 “사람들은 단지 칠정(七情) 가운데 오직 슬픈 감정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 알 뿐 사실 일곱 가지 감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알지 못하네. 기쁨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노여움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즐거움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사랑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미움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욕망이 지극해도 울 수 있지. 답답하게 맺힌 감정을 활짝 풀어버리는 데는 소리 질러 우는 것보다 더 좋은 치료법이 없다네”라고 답변한다.

그러자 정 진사는 “지금 울 만한 곳이 저토록 넓으니 저도 선생과 같이 한바탕 통곡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통곡하는 까닭을 일곱 가지 감정 가운데 무엇에서 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감정을 골라잡아야 하겠습니까?”라고 재차 묻는다.

이 질문에 박지원은 “그것은 갓난아이에게 물어보아야 할 일이네”라고 하면서 어머니의 뱃속에서 막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맞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야말로 거짓 꾸밈없는 천연의 감정이자 최초의 본심이라고 말한다.

“갓난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느낀 감정이 무엇이겠는가? 갓난아기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동안 어둡고 막혀서 답답하게 지내다가 어머니의 뱃속을 벗어나 하루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와 손을 펴보고 다리를 펴보게 되자 마음과 정신이 넓게 활짝 트이는 것을 느낄 것이네. 어찌 참된 소리와 감정을 다해 자신의 마음을 크게 한번 발출(發出)하고 싶지 않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는 거짓 꾸밈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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