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색(好色)과 호서(好書)…‘나는 나를 벗하며 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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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색(好色)과 호서(好書)…‘나는 나를 벗하며 사는 사람이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8.2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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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51)

[한정주 역사평론가] 호색(好色)하는 사람은 골수가 마르고 살이 빠지다가 죽게 되는 날 저녁에는 정욕이 상승되는 것인데도 마침내 뉘우치는 마음이 없어 단지 하나의 호색 속에서 주려 죽는 귀신이 되는 법이다.

내가 일찍이 비웃고 가엾게 여기고 두려워하다 경계하다 하면서도 나 자신이 불행히도 가까이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으니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이 너무도 호색하는 것과 비슷하다.

요사이 유행하는 풍열(風熱) 때문에 오른쪽 눈이 또한 가렵고 아프므로 사람들이 자못 책병[書祟]이라고 놀리게 되는데 내가 다소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책은 차마 하루도 떠날 수가 없어 매양 눈을 한 오라기 가량이라도 뜰 적마다 모여 있는 글자와 먹 속의 정수[精華]를 힘주어 식선자법(食仙字法)처럼 바라보게 되니 색에 빠지는 그네들이 응당 나를 야유할 것이다.

9월 그믐날 오우아거사(吾友我居士)는 실없이 쓴다.

好色者 髓枯膚削 至于死之夕而慾火上升 終無悔心 成就只一色中餓鬼 余嘗笑之憐之 懼之戒之 勿顧自家有不幸而近之者 余之好書 太類好色 近以天行風熱 右眼亦癢 人頗恐動以書祟 余稍然之 然書不忍一日離 每開眼一線許 湊集字墨間 精華用脉 望食僊字法 彼殉於色者 應揶揄我 九月晦 吾友我居士戱寫. 『이목구심서 2』

여색에 지나치게 탐닉하면 육신은 물론 정신도 병든다는 사실은 새삼 거론할 것도 없다. 그러나 색욕(色慾)에 한번 미혹되면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어 살이 빠져 삐쩍 마르고 골수가 말라 죽음에 이르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끝내 끊지 못한다.

풍열로 인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도 차마 책을 보는 것을 그만두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치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는 색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호색(好色)이 색욕(色慾)에서 기인한다면, 호서(好書)는 서욕(書慾)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세상 사람들이 호서(好書)와 서욕(書慾)을 호색(好色)과 색욕(色慾)에 빗대어 조롱하고 야유하더라도 책을 향한 이덕무의 일편단심을 끊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오우아거사(吾友我居士)’, 곧 ‘나는 나를 벗하며 사는 사람이다’라는 자호의 뜻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를 버린다고 하더라도 오로지 책을 좋아하는 나 자신을 친구 삼아 묵묵히 살아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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