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문·지식·도리에 의존한 글은 가짜 글·거짓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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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지식·도리에 의존한 글은 가짜 글·거짓 문장”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9.02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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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③ 동심(童心)’의 미학③
 

[한정주=역사평론가] 그런데 사실 이덕무보다 앞서 ‘동심’을 하나의 문장론으로 만든 철학자가 있었다. 이덕무가 주장한 ‘영처(嬰處)의 철학’ 역시 이 사람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바로 자신이 저술한 책을 가리켜 ‘불살라야 할 책’이라는 뜻의 『분서(焚書)』와 ‘감추어야 할 책’이라는 뜻의 『장서(藏書)』라고 이름 붙인 중국 철학사 최고의 문제적 인물 이탁오이다. 그의 독특한 문장 철학을 담고 있는 ‘동심설(童心說)’은 『분서』 가운데 수록되어 있다.

이탁오는 명나라 말기에 활동했는데, 그가 죽고 난 후-비록 그의 저술은 금서(禁書)로 지정되고 또한 극단적인 비난과 찬사가 공존했지만-참신하고 창의적이며 독특한 글쓰기를 추구한 문장가치고 ‘동심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어린아이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최초의 모습이며, 동심(童心)이란 사람이 처음 지니게 되는 마음의 최초 모습이다. 무릇 최초로 지니게 된 마음을 어찌 잃어버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찌하여 사람들은 갑자기 동심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모름지기 그 시작은 듣고 보는 것이 눈과 귀로 들어와 사람의 마음속에서 주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동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자라면서 도리(道理)가 눈과 귀로 따라 들어와 사람의 마음을 주재하게 되면 역시 동심을 잃고 만다. 어른이 되어 도리(道理)와 견문(見聞)이 나날이 더욱 많이 쌓이고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이 나날이 더욱 넓어지게 되면 명성이 알려지고 명예가 높아지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 마침내 명예와 명성을 드날리려고 힘을 쏟다가 동심을 잃어버리게 된다. 또한 나쁜 평판과 불명예가 추하다고 여겨서 그것을 애써 감추려고 애를 쓰다 동심을 잃고 마는 것이다.

무릇 도리와 견문이라는 것은 모두 많은 책을 읽고 의리(義理)를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나온다. 옛 성인(聖人)들이 어찌 책을 읽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책을 읽지 않아도 동심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책을 많이 읽어도 또한 동심을 그대로 보호하여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이 책을 많이 읽고 의리를 알게 되는 것이 오히려 동심에 장애가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만약 학문하는 사람이 책을 많이 읽고 의리를 알게 되는 것이 동심에 장애가 된다면, 옛 성인들이 왜 많은 책을 저술하고 말씀을 남겨서 훗날 배우는 자들에게 장애가 되게 했겠는가. 동심에 이미 장애가 생겨나면 말을 한다고 해도 그 말은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온 말이 아니고,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맡는다고 해도 그 다스림은 바탕을 잃게 되고, 저술한답시고 글을 쓰려고 해도 그 글은 이미 활달하지 못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게 된다.

마음속에 함축되어 있는 문장의 아름다움이 드러나지도 않고, 돈독하고 진실한 생기(生氣)와 찬란한 빛이 드러나지도 못하게 되니, 한 마디 구절과 덕(德)이 있는 말을 구하려고 애를 써봤자 끝내 아무것도 얻지 못할 뿐이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동심에 이미 장애가 생겨서 외부에서 들어온 견문과 도리를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버리기 때문이다. 무릇 견문과 도리가 자신의 마음을 차지해버리면, 곧 말하는 것은 모두 견문과 도리의 말일 뿐 스스로 동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그 언사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나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데 나와 무슨 관련이 있는 말이겠는가. 어찌 진짜 나가 아닌 가짜 나의 가짜 말이 아니고, 진짜 나가 아닌 가짜 나의 가짜 일이 아니고, 진짜 나가 아닌 가짜 나의 가짜 글이 아니겠는가. 이미 그 사람이 가짜라면 가짜 아닌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마련이다. …… 천하의 지극한 문장은 동심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만약 사람이 항상 동심을 보존할 수만 있다면 도리가 행해지지 않고 견문이 행세하지 못하게 되므로, 아무 때나 글을 지어도 훌륭한 문장이 되고, 아무나 글을 지어도 훌륭한 문장이 되고, 어떤 양식과 문체와 격식과 문자를 창제(創制)한다고 해도 훌륭한 문장이 아닌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이탁오, 『분서(焚書)』, ‘동심설(童心說)’

이탁오는 앞서 이덕무가 지적한 것처럼 대개 사람들이 글을 잘 지으려고 쌓는 수많은 지식과 인위적인 작용이 오히려 ‘동심(童心)’을 가리고 해쳐서 최초의 본심(本心), 곧 진실한 마음을 잃게 만든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독서와 공부를 하고, 견문과 지식을 쌓는다고 해도 하더라도 동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만약 동심은 잃어버린 채 견문과 지식과 도리에만 의존해 글을 짓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감정과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단지 옮겨 적은 ‘가짜 글’이요 ‘거짓 문장’에 불과할 뿐이다.

천하의 명문(名文)은 동심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는 주장은 곧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 진실한 감정과 본마음을 바탕삼아 지은 문장만큼 감동을 주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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