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가 사라진 세계는 황폐해져가고 있다”…『갈색의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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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가 사라진 세계는 황폐해져가고 있다”…『갈색의 세계사』
  • 이성태 기자
  • 승인 2015.09.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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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4월 인도네시아 반둥회의 참석한 자와할랄 네루(인도), 크와메 은크루마(가나), 가말 압둘 나세르(이집트), 수카르노(인도네시아), 요시프 티토(유고슬라비아) 등의 지도자들은 제3세계 프로젝트를 채택했다.

20세기 중반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인민들은 ‘제3세계’라는 프로젝트로 새로운 세계를 꿈꿨다.

제국주의 시대가 종말로 치닫고 있던 당시 그들은 무엇보다 인간적 존엄성을 그리고 삶의 필수재인 토지, 평화, 자유를 염원했다.

제3세계는 이러한 희망과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들을 아우르는 프로젝트였다.

백인이 주도하는 양극단의 냉전에 의해 두 진영으로 갈라진 세계에서 황인과 흑인 인민들이 제3세계라는 이름 아래 모여 자유를 쟁취하고자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 평등, 자원의 재분배, 노동에 합당한 보상, 인류 유산의 공유 등의 의제를 내세워 세계를 좀 더 나은 세계로 바꾸고자 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제3세계는 실패한 국가, 기근, 빈곤, 절망의 동의어가 돼버렸다.

소련과 공산주의 진영의 붕괴로 진영 구분론 자체가 낡은 것이 되기도 했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들을 가리키는 다분히 모욕적인 표현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신간 『갈색의 세계사』(뿌리와이파리)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3세계 프로젝트의 흥망을 추적한다.

제3세계의 탐색(1920년대 브뤼셀)에서 몰락(1980년대 메카)에 이르기까지 제3세계 인민들이 보여준 투쟁과 사상들을 발굴하면서 각 시대의 풍요로운 역사를 들여다본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간 멸시당하고 착취당해온 제3세계가 운명의 주인이 돼 자신의 운명을 바꾸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실패한 투쟁의 역사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한때 찬란하게 빛났던 제3세계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왜 오늘날 제3세계에는 국수적 민족주의와 종교적 근본주의 말고는 아무런 급진운동이 보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도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저자는 제3세계 내부의 모순을 그 뿌리부터 파헤치는 좀 더 어렵고 복잡한 방식을 택했다. 덕분에 독자들은 훨씬 입체적으로 제3세계의 실패를 되돌아볼 수 있다.

저자는 서론에서 “제3세계 의제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있던 시절 세계는 나아져갔다”면서 “그러나 그런 움직임이 사라진 지금 세계는 황폐해져가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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