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어린아이의 소꿉놀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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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어린아이의 소꿉놀이’와 같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9.22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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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③ 동심(童心)’의 미학⑥
▲ 기산 김준근의 풍속도 ‘아이들이 놀고’.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덕무 역시 일종의 수필집이자 수상록(隨想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갓난아기의 울음과 같이 거짓 꾸밈이 없는 참된 소리와 감정’을 일컬어 ‘진정(眞情)의 발로(發露)’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진정(眞情)의 발로는 봄날 죽순(竹筍)이 흙을 뚫고 나오는 듯 자연스러운 반면 가식으로 꾸민 감정은 맑은 물에 기름이 뜬 것과 같다’고 역설했다.

“진정(眞情)의 발로(發露)는 마치 고철(古鐵)이 활기차게 못에서 뛰어오르고, 봄철 죽순(竹筍)이 성낸 듯이 흙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다. 거짓으로 꾸민 감정은 마치 먹(墨)을 매끄럽고 넓은 돌에 바르고, 기름이 맑은 물에 뜨는 것과 같다. 칠정(七情) 가운데 슬픔이 가장 직접적으로 발로하여 거짓으로 꾸미기 어려운 것이다. 슬픔이 아주 지극하여 통곡이 되면 그 지성(至誠)스러운 마음을 은폐할 수 없다. 그러한 까닭에 진정으로 우는 울음소리는 뼈 속에 사무치게 되는 반면 거짓으로 꾸며 우는 울음소리는 터럭 밖으로 뜨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의 참됨과 거짓됨을 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덕무, 『청장관전서』, ‘이목구심서’

그리고 ‘동심(童心)의 미학’을 바탕으로 하는 글쓰기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이덕무는 글쓰기를 비롯해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어린아이의 소꿉놀이’와 같다고 말한다.

“담뱃대 한 자루와 좋은 담배 한 근을 받들어 올립니다. 이 일이 비록 자잘하기는 하지만 정말 재미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는 짓은 어린아이들이 상수리와 대합 껍질로 그릇을 삼고, 모래를 모아 쌀로 삼으며, 부서진 사금파리로는 돈을 삼아서 주고받기도 하고 물물교환하기도 하는 소꿉놀이와 너무도 흡사하군요. 그렇지만 거기에는 지극한 즐거움이 있답니다. 노형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덕무, 『청장관전서』, ‘서이수에게 보내다(與徐而中理修)’ (안대회 지음,『고전산문산책』, 휴머니스트, 2008.에서 인용)

이덕무보다 후대에 활동했던 조희룡 역시 이덕무의 영향을 받아 글쓰기와 어린아이의 소꿉놀이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했다.

조희룡은 화가이자 문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글은 그림에 부친 제화(題畵)의 글이 많다.

특히 그는 만년에 접어들어 수많은 제화(題畵)를 모아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을 엮었다. 그리고 이 책의 ‘발문(跋文)’에서 자신의 글쓰기를 어린아이의 소꿉놀이에 비유했다.

“이러한 산만하고 무료한 말을 이 작은 제목을 빌려 표현하거니와 여기에는 내 마음이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을 어린애들이 티끌로 밥을 삼고, 흙으로 국을 삼고, 나무로 고기를 삼아 소꿉놀이하는 것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그런 물건들이 그저 유희에 불과할 뿐 먹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들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밥이나 국이나 고기로 보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이 책은 마땅히 그렇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발(漢瓦軒題畵雜存跋)’ (조희룡 지음, 한영규 옮김,『매화 삼매경』, 태학사, 2003.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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