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별게냐?…“이때만큼은 신선이 아니라 부처라고 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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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별게냐?…“이때만큼은 신선이 아니라 부처라고 해도 괜찮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9.23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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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60)
 

[한정주 역사평론가] 신선은 별다른 사람이 아니다. 마음속에 한 점의 누도 없어 도가 이미 원숙한 지경에 이르고 금단술(金丹術)이 거의 이루어졌을 때를 말한 것이다.

매미처럼 껍질을 벗고 날아서 하늘에 오른다는 것은 억지 말이다. 만약 내 마음에 잠깐이라도 누가 없으면 이는 잠깐 동안 신선이 된 것이고 반나절 동안 누가 없으면 반나절 동안 신선이 된 것이다.

나는 비록 오랫동안 신선이 되지는 못하지만 하루에 두세 번쯤은 신선이 된다.

세상을 발밑에 두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신선이 되려 하는 사람은 일생 동안 한 번도 될 수 없을 것이다.

神仙非別人 澹然無累時 道果已圓 金丹垂成 彼飛昇蛻化 勉強語耳 如我一刻無累 是一刻神仙 半日如許 爲神仙半日矣 我則雖不能耐久爲神仙 一日之中 幾三四番爲之 夫腳下軟紅塵勃勃起者 一生不得爲一番神仙. 『선귤당농소』

신선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만약 사람들이 붐비는 저자거리 한복판에 있지만 일각(一刻)이라도 그 마음에 걸리거나 얽매이는 것이 없다면 바로 그 순간 신선이 된다.

산 속 깊숙이 몸을 숨기고 세상을 멀리 등진 채 사는 사람이 신선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비록 그윽한 산 속에 거처하면서 세상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마음에 걸리거나 얽매이는 것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범인(凡人)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나도는 온갖 종교 서적 가운데 볼 만한 글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유독 불교의 원시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이런 말 만큼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법정 옮김, 『숫타니파타』, 이레, 2008, p34.)

신선이 대수겠는가? 만약 이러한 순간이 짧든 길든 자신의 마음에 자리한다면, 이때만큼은 신선이 아니라 부처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때는 하루에 200자 원고지 100장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랄 만큼 글을 쓸 수 있다가도, 어떤 때는 하루가 아니라 한 달 아니 일 년이 다 지나가도록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마음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을 때는 애써 쓰려고 하지 않아도 술술 글이 나오다가도 마치 그물에 갇힌 것처럼 내 마음 속 한 귀퉁이일망정 걸리거나 얽어매는 것이 있기라도 하면 단 한 글자도 쓰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만나 어떻게 글을 쓰는지에 대해 말할 때면 종종 이렇게 토로하곤 한다.

“숙제하듯이 쓰는 글이 가장 나쁘다. 왜 그런가? 숙제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다. 학교나 선생에게 꾸중 듣지 않을까 무서워 마지못해 할 뿐이다. 그래서 숙제는 대개 참고서에 나오는 모범 답안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가 한 것이지만 도리어 내가 한 것이 아닌 것이 바로 숙제다.

또한 목적이 있거나 남을 위해 쓰는 글이 가장 좋지 않다. 왜 그런가? 이 경우 십중팔구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남이 원하는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이지만 오히려 내가 쓴 글이 아닌 것이 바로 목적이 있거나 남을 위해 쓰는 글이다. 따라서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을 때 쓴 글이 가장 좋다.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글을 써야 비로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매문(賣文)에 걸리고 매명(賣名)에 얽매이는 한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어찌 보면 밥벌이를 숙명처럼 안고 살아야 할 자본주의 체제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평생 동안 갈등하고 또한 맞서 싸워야 할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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