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 감상…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이질적 세계의 지식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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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 감상…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이질적 세계의 지식과 문화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10.02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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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64)

[한정주 역사평론가] 서여오(徐汝五)가 말하기를 “종실(宗室) 낙창군(洛昌君)이 사신으로 연경(燕京)에 갔을 때 서양(西洋)의 이름 있는 화가를 만났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는 부레풀을 비단 위에 바른 뒤에 눈을 들어 잠시 한번 살펴보고는 돌아앉아서 급히 큰 붓을 움직여 짙은 물감을 칠하는데 대개 간략하게 형용만 그린 그림이다.

이를 가까이서 보면 매우 거칠게 대강 칠해진 것이 보기 싫지만 벽에 걸어 놓고 멀리서 바라보면 뺨의 능선과 옷의 꿰맨 부분이 실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상(上)이 명하여 가져다 보고는 그 그림 위에 ‘도상(圖像) 중 제일’이라고 쓰니, 이로부터 중국 사람들이 자주 이 방법을 본받아 그린다고 한다” 하였다.

徐汝五曰 宗室洛昌君入燕 逢西洋名畵師 畵其像 以魚膘水鋪綃本 擡眼潛視 一次背坐 忙急揮洒 以大筆濃染 盖沒骨圖也 近觀之 極迂濶 點染可憎 揭壁遠看 則頰稜衣㱀 活動如眞 自上命取入來觀之 仍題其上曰 圖像中第一 自此 華人往往效此法云矣. 『이목구심서 4』

18세기 조선에서 서양화가 크게 유행했다는 사실은 이익의 『성호사설』과 그의 문집인 『성호전집』속 글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서양화에 매혹되었던 까닭은 동양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뚜렷한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동양화와 다른 ‘원근법(遠近法)’과 동양화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입체적 사실감’이었다.

사실 동양화에도 원근법이 있다. ‘가까운 것은 크게 그리고, 먼 것은 작게 그리거나’, ‘가까이 있는 사물은 선명하게 그리고, 멀리 있는 사물은 흐릿하게 그리는’ 화법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서양화의 원근법과 입체적 사실감은 분명 경이로운 경험이고 새로운 세계 및 사유와의 조우였다.

여기에서 보면 이덕무는 서양화 감상법을 직관적으로 깨우쳤던 것 같다. 멀리서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는 당시 서양화의 가장 큰 특징인 원근감과 입체적 사실감을 십분 느낄 수 있는 그림 감상법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이덕무와는 약간 다른 방식의 서양화 감상법이 등장한다.

이 책의 「만물문(萬物門)」 ‘화상요돌(畵像坳突)’ 편에서 이익은 근래 청나라 연경에 사신으로 갔다 온 사대부들은 대부분 서양화를 사다가 자신의 집 마루에 걸어 놓는다고 소개하면서 “서양화를 볼 때 한쪽 눈은 감고 다른 한쪽 눈으로 오랫동안 주시하면 그림 속 건물과 풍경이 모두 실제 모습 그대로 우뚝 튀어나오게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이 소개한 방식대로 서양화를 감상해야 하는 까닭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이것은 화공의 오묘한 기법이다. 그 원근(遠近)과 장단(長短)의 분변과 치수가 분명하기 때문에 한쪽 눈으로만 시력을 집중해야 그 실체가 제대로 나타난다.”

더욱이 그는 청나라에 온 서양인 선교사이자 학자인 중국명 이마두(利瑪竇) 곧 마테오 리치가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幾何學原本)』을 한문으로 번역한 책인 『기하원본(幾何原本)』에 쓴 ‘서문’의 내용을 옮겨 적어 ‘서양화의 원근법과 입체적 사실감의 과학적 이치’까지 상세하게 밝혀놓았다.

“그림을 그리는 기술은 시각에 있다. 먼 곳과 가까운 곳(遠近), 올바른 것과 사악한 것(正邪), 높은 곳과 낮은 곳(高下)의 차이에 따라 물체를 조망해야 제대로 그릴 수 있다. 둥근 모양과 네모난 모양의 도수(度數) 또한 그림 판 위에서는 분명하게 계산해야 물체의 모양과 실제 모습을 멀리서도 헤아릴 수 있다.

작은 것을 그릴 때 눈은 큰 것을 보고, 가까운 곳을 그릴 때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둥근 모양을 그릴 때 눈은 둥근 공(球)을 본다. 초상화를 그릴 때는 오목하게 파인 부분과 돌출되어 우뚝한 부분이 있어야 하고, 건물을 그릴 때는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허주(虛舟)의 그림에 붙인 발문(跋虛舟畫)’에서는 서양화의 유행과 세상 사람들의 의혹에 대해 정밀하게 분석하면서 그 원근과 입체의 화법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근래 들어 연경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서양화를 지니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 전각과 궁궐의 구조, 인물과 기물, 네모난 모퉁이와 둥근 구석을 그려놓은 것이 마치 실제 모습과 같이 아주 뚜렷해 서양화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말이 대개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 아니었다.

서양화를 보는 사람들은 이 그림을 두고 남해의 방루(蚌淚)나 옥초산(沃焦山)의 돌처럼 눈을 현혹하는 환약(幻藥)의 종류를 쓰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서양화를 살펴보면 단지 연필로 그리거나 인쇄된 그림들도 모두 그렇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자구가 말하기를 ‘이것은 먼 곳과 가까운 곳(遠近), 구부러진 것과 곧은 것(曲直), 미세한 것과 거대한 것(細大), 감춘 곳과 드러낸 곳(隱現)의 형세와 분변과 치수를 분명하게 묘사하는데 불과하다’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의 잘 그린 그림이 어찌 그만 못하겠는가. 지금 이허주(李虛舟)의 ‘팔경도(八景圖)’를 보고 있자니 동정호(洞庭湖)와 소상강(瀟湘江) 사이의 풍경을 전과 다름없이 그렸는데 대개 실제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원근과 입체의 화법이 어떤 기예인지 깨닫지 못하였을 뿐이다.”

이덕무와 이익의 글을 통해 나는 학문과 지식은 물론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하고 도입했던 18세기 지식인의 진면목을 엿본다.

모름지기 참된 지식인이라면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이질적인 세계의 지식과 문화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열린 마인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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