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장도(臟圖)…18세기 조선 지식인의 혁신적인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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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장도(臟圖)…18세기 조선 지식인의 혁신적인 사유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10.07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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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65)

[한정주 역사평론가] 옛 장도(臟圖)에는 인(咽)이 후(喉)의 뒤에 있다. 그러나 서양의 장도를 보면 후가 인의 뒤에 있다. 이것이 의아스러운 단서이다.

그러나 손으로 목을 더듬어 헤아려보면 위로 통하는 기관이 분명히 앞에 있으니 서양의 장도가 맞는 것 같다.

古臟圖 咽在喉之後 歐圖 喉在咽之後 此疑端也 然以手摩頸而測之 則胃管分明在前 歐圖似是. 『이목구심서 3』

지금까지 인문학계에서는 “조선에는 서양의 인체해부도가 없었다”는 학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기록만 보면 18세기 조선에는 분명 서양의 인체해부도가 있었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서양의 장도’는 곧 인체의 내부 장기(臟器)를 그린 인체도(人體圖)를 뜻한다. 그렇다면 그 장도는 또한 ‘인체해부도’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는 이덕무가 18세기 일본학의 대가였다는 사실을 통해 반드시 그가 서양의 인체해부도를 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 그런가? 일본에서 서양의 학문과 지식을 받아들여 수용하는데 최선봉장의 역할을 한 이들은 다름 아닌 ‘의사’였다.

1773년 의사인 스키타 겐파쿠는 서양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한 최초의 책인 『해체신서(解體新書)』를 출간했다. 그것은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난학(蘭學)’의 출발이었다. 이 책의 독일어 원서가 출간된 후 300여년이 지나 비로소 동양은 서양의 인체해부도를 본격적으로 탐독하게 되었다.

이 책의 번역본 출간은 일본이 동양의 인간관과 세계관과 우주관에서 탈피해 서양의 그것들로 탈바꿈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영국의 일본학 연구가인 타이먼 스크리치 런던대 교수가 “에도의 몸을 열다!”는 다분히 상징적인 묘사로 『해체신서』의 출간을 해석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일본의 난학자들이 서양에 자신의 몸과 정신을 완전히 개방했다는 역사적·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번역본이 출간되기 훨씬 이전부터 일본에서는 이 책의 독일어 혹은 네덜란드어 판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즉 18세기 동아시아에서 서양의 인체해부도를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더 이상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따라서 청나라 연경(북경)을 오고 간 연행사(燕行使)를 통해 ‘서양의 장도’가 조선에 들어왔다고 추정할 수도 있고, 일본의 에도(도쿄)를 오고 간 조선통신사를 통해 ‘서양의 장도’가 조선에 들어왔다고도 추론해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의 본토까지 들어간 마지막 조선통신사였던 계미년(1763년) 사신 행렬에는 북학파의 일원이자 이덕무와 사돈지간이었던 현천 원중거가 참여했다. 그는 최신 일본 백과사전인 『화한삼재도회』를 가져와 이덕무에게 건넸을 뿐만 아니라 그밖에도 일본에 관한 엄청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제공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목구심서』는 이덕무가 23세부터 26세까지 3년 간 기록한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덕무는 1741년생이니 23세는 1762년이고 26세는 1765년이다. 계미사행의 조선통신사가 조선으로 돌아온 직후다. 일본에서 유행했던 ‘서양의 장도’, 즉 인체해부도가 조선에서 돌아다녔을 가능성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는 시기이다.

특히 수천 년 동안 어떤 사람도 전혀 의심하지 않은 동양의 오래된 전통, 즉 ‘고장도(古臟圖)’보다는 오히려 당시 사람들이 불신하고 거부했던 ‘서양의 장도’가 더 믿을 만하다는 이덕무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양의 의학은 장기의 ‘기능’에 치중했다면 서양의 의학은 장기의 ‘구조’에 집중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동양 의학에서는 인간의 몸을 해부한다는 사고가 설 자리가 없었다. 이러한 까닭에 그 정확성에서 동양의 ‘고장도’는 서양의 ‘인체해부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덕무는 이 점을 간파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더 서양의 학문과 지식과 정보를 아무런 편견 없이 볼 줄 알았던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혁신적인 사유와 조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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