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취업자의 눈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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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취업자의 눈높이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03.17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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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초쯤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꽤 오랜만의 통화였던 탓에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정작 그 분의 용건은 아들의 취업 부탁이었습니다.

기자 시절 기업을 출입했기 때문인지 주변에서는 기업과 관련된 청탁들이 심심치 않게 들어옵니다. 심지어는 납품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도 합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나에게까지 이런 전화를 했을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의 난처함 역시 상대방이 이해할 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 후 지인의 아들이 지원했다는 기업과는 무관한, 다른 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지인의 청탁 이야기를 했습니다. 친구는 손사래부터 쳤습니다. 인사팀 근무 이후 이곳저곳에서의 청탁 때문에 퇴근 후에도 퇴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친구 말에 따르면 최근 인사청탁의 경우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들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또 연령대도 서른 살을 훌쩍 넘긴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명문대 출신이다 보니 눈만 높아 졸업 후 수 년 동안 소위 급여 많고 복지혜택 좋은 인기 직종, 인기 기업만 쫓아다녔던 것입니다.

얼마 전 청년인턴을 모집한 한국거래소 지원창구에도 명문대 출신들이 넘쳐났다고 합니다. SKY 출신은 물론 해외에서 MBA 과정을 마친 지원자도 줄을 섰다는 후문입니다.

지인의 아들 역시 고시 준비로 수년을 보내다 올해 서른두 살에 취업으로 선회한 경우입니다. 지인은 아들이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니 취업은 누워서 떡 먹기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재학시절부터 고시준비에 매달렸던 아들의 낮은 학점과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영어실력은 그 분의 안중에 없었습니다.

비단 지인만이 아닙니다. 주변에서 접하는 많은 이들이 고학력·고스펙을 앞세워 취업시장의 인기 직종·인기 기업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를 앞세운 취업청탁도 쉽게 들려옵니다.

지금도 자주 만나는 고교 동창 녀석들이 떠오릅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던 한 친구는 스물여덟에 네 번째 낙방을 경험하고는 미련 없이 공기업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함께 시험을 준비했던 다른 두 친구는 그 해와 다음 해 차례로 합격했지만 현재의 모습은 20여 년 전과 딴판입니다.

공인회계사가 되었던 두 친구는 공인회계사와는 전혀 다른 직업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기업 입사를 선택했던 친구는 소위 말하는 ‘신의 직장’에서 안정적인 생활은 물론 능력도 인정받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공기업은 지금처럼 ‘신의 직장’이 아니었습니다.

청년고용시장에 거센 삭풍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업률은 4개월째 상승곡선을 이어가고 있지만 청년층 실업률은 2월 두 자릿수로 올라서며 지난 2000년 2월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통계청은 졸업과 채용시기로 청년층의 활발한 구직활동 증가와 가사 및 쉬었음의 비경제활동인구 감소가 실업자 증가와 실업률 상승 원인이라고 분석했지만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고학력·고스펙 취업지원자의 눈높이가 아래로 향하지 않는 한 청년실업률 감소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눈높이를 조금만 낮춰도 자신을 원하는 곳은 널려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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