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세계 드러내 보여준 시대사조와 작가정신…이옥의 ‘충성부(蟲聲賦)’
상태바
내면세계 드러내 보여준 시대사조와 작가정신…이옥의 ‘충성부(蟲聲賦)’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11.02 0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④ 옛것과 새것의 변통과 통섭…법고(法古)와 온고(溫故)의 미학④
 

[한정주=역사평론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 사람인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를 본받아 지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이옥의 ‘충성부(蟲聲賦)’는 비록 구양수의 문장을 법고(法古)로 삼아 지었지만 하늘과 벌레 소리의 관계를 빌어 글을 쓰는 문인으로서의 자기 존재와 세상의 관계를 철저하게 고민하고 회의했던 내면세계를 드러내 당대의 시대사조와 작가 정신을 새롭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 철학을 대표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생이 한밤에 조용히 앉아 있는데 마침 시절은 서늘한 가을이라 대지의 온갖 만물이 모두가 고요하거늘 홀연 어떤 소리가 사방 벽에서 일어나 귀에 들렸다. 처음에는 소곤소곤 말을 하는 듯 하더니 차츰 찌직찌직 처량한 소리를 낸다. 마치 남편을 잃은 여인이나 버림받은 아내가 훌쩍훌쩍 소리를 삼키면서 우는 듯하다.

길 떠난 사람의 혼백과 일찍 죽은 혼령이 흐느껴 울면서 괴로워하는 것도 같다. 참소를 입어서 제 지위를 잃은 기신(畸臣: 외로운 신하)과 소객(騷客: 시인)이 마치 고향을 그리워하며 괴롭게 시를 읊으면서 밤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 선생이 그 소리를 듣고는 쓸쓸히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것은 벌레소리로군. 너는 시월에 사람 사는 집에 들어와 곧 세모가 이르리란 것을 알리는 것이냐? 장차 추워지려고 하므로 촉직(促織: 옷짜기를 재촉함) 소리를 내어 사람들보다 먼저 염려하는 것이냐? 아니면 가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읊는 것이 마치 어진 신하가 제 시절을 만남과 같은 것이냐? 슬픈 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가을에 선비의 슬픔을 조장하는 것이냐?

은둔을 달게 여기고 팔리지 않기에 그 자취가 춥고도 맑구나. 풀을 먹지 봉급을 먹지 않기에 그 마음이 텅 비고도 신령하구나. 그러니 그 소리라는 것이 불평처럼 들린다고 해도 괴이할 것이 조금도 없구나.

하지만 네 자질이 비록 미미하여도 너 또한 하늘이 낳은 것이고, 소리는 비록 너에게서 나오지만 실은 하늘이 너의 울음을 빌린 것이니, 그 소리는 너의 소리가 아니라 곧 하늘의 정이로다.

그렇다면 하늘이 무엇 때문에 네 울림을 이렇게 슬픈 지경에 이르게 하였더냐? 비와 바람이 명령을 제대로 듣지 않아 황천의 기강이 올바로 펼쳐지지 못하는 걸 염려하는 것이 아니냐? 말세가 이법(理法)을 따르지 않아 세속이 건전치 못한 걸 애통해 하는 것이 아니냐?

한 해 농사의 수확이 풍성하지 못한 걸 가련히 여겨서 산업을 잃고 떠도는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냐? 음기가 점차 강해짐을 슬퍼하고 다 죽어가는 양기를 조문하는 것이 아니냐?

아니면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수심이 산이나 성같이 쌓여 하늘의 가슴을 채우고 하늘의 내장까지 뻗쳐서 그런 것이냐?

어찌 구구하게도 너의 혀를 빌리고 처량하게도 너의 배를 울려서 지사가 듣고는 가을을 탄식하고 님 그리는 여인이 듣고는 한밤에 통곡하게 만든단 말인가? 아아! 사물이 하늘을 대신하여 우는 것이 어찌 너만 그러하랴?

꾀꼬리는 봄에 울어서 우리를 부드럽고 순하게 만든단다. 매미는 한더위에 울어 여유를 느끼고 고통을 잊게 한단다. 그 아래로 새벽의 지렁이와 저녁의 개구리도 모두 사람들의 찬탄을 받지 않는 것이 없구나.

하지만 너는 어째서 유독 가을에 울어 우리로 하여금 근심과 수심을 이기지 못하게 한단 말이냐? 성쇠라는 것은 하늘의 운세가 변천하는 것이기에 역시 하늘도 어찌할 수 있는 바가 아니어서 그런 것이냐? 어찌하여 하늘이 너에게 지절대는 혓바닥을 돌려주어 나를 위해 자세히 말해 주지 않느냐?

거듭거듭 따져도 벙어리처럼 묵묵하구나. 하늘에다 물으려 한다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랴? 다만 가을비가 소소(蕭蕭)하여 시끌시끌한 가을벌레 소리와 어울려 더 시끄럽게 하는 것만 들릴 뿐이로다.” 이옥, ‘벌레 소리(구양수의 추성부를 본받아 짓다) 蟲聲賦(效歐陽子秋聲賦)’ (이옥 지음, 심경호 옮김,『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태학사, 2001.에서 인용)

이렇듯 ‘고(古)’와 ‘신(新)’이 통섭(通燮)하는 글이라면 구태여 ‘법고(法古)’가 옳다느니 ‘창신(創新)’이 옳다는 등의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없다. 따라서 박지원이 주장한 ‘법고창신’의 핵심 주제란 옛 것을 익히되 새로운 것을 창조할 줄 알아야 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되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