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키워드로 본 한국 소비사회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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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키워드로 본 한국 소비사회의 기원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3.2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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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교양·건강·섹스·애국…소비형 인간의 탄생

▲ TV 광고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개항장을 거쳐 박래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광고는 외국에서 온 이 낯선 물건들을 기꺼이 구매해 줄 소비자를 만들어 내는 임무를 맡았다.

광고는 상품의 세계를 신화화했다. 출세, 교양, 건강, 섹스, 애국 등의 가치들이 상품 소비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내세우며 소비자를 유혹했다.

사회는 구매력을 중심으로 재편된 새로운 소비의 위계질서 속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상품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갔다. 마침내 탄생한 소비 인간(Homo consumus)은 오늘날 우리 모두의 이름이 되었다.

입신을 위해 각종 스펙에 매달리고 그에 호응하는 수험서와 학원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집 안 서가에 진열된 명작 전집은 우리가 ‘교양인’임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되고 예부터 큰 관심사였던 불로장생은 웰빙과 힐링이라는 세련된 말로 탈바꿈해 우리 주변을 맴돈다.

걸그룹의 등장에는 늘 선정성이 이슈가 되고 글로벌 IT 기업의 신상품 출시 대결 구도는 자연스레 국산 대 외제의 대결로 이어진다.

이처럼 인간이 욕망하는 가치들은 늘 상품을 통해 드러난다.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상품은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기호이며 우리가 행하는 소비를 통해 우리는 규정된다.

한국에서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개항지를 중심으로 박래품이 유입된 이후 소비사회가 시작됐다.

말 그대로 다른 나라에서 배로 실어온 물품인 박래품은 당시 사람들이 전혀 접해 보지 못한 낯선 물품들이었고 이를 팔기 위해서는 널리 알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상업 광고가 등장한 시점이다. 당시 광고는 단순히 어느 한 가지 물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상품을 소유하지 못함을 사람들이 문제로 느끼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광고는 소비자를 만들어 내야 했다. 광고는 새로운 생산자와 생산물을 소개하는 일종의 ‘알림’ 역할로 출발했지만 이는 상품의 세계를 신화화하고 욕구를 만들어 내는 일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 광고라는 신화는 상류층의 생활을 표준으로 제시하며 사람들의 계층 상승 욕망을 자극했다.”(22쪽)

광고는 근대성을 소비와 연결시켰고 다양한 근대적 가치가 광고를 통해 일상화됐다. 성공, 인격, 건강, 섹스, 지식과 교양, 민족과 국민까지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현장이 광고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광고가 자극한 사람들의 욕망은 다섯 가지다. 즉 출세, 교양, 건강, 섹스, 애국이 그것이다.

근대 이전의 사람이라고 성공과 미와 쾌락, 건강을 중요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무병장수는 인간의 오랜 꿈이었고 입신출세는 가문의 가업이었으며 오락과 여흥, 사랑이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도입되고 소비사회로 들어서면서 입신과 출세, 취미와 오락, 성(性)과 위생, 건강의 가치가 새로워졌다.

예컨대 입신은 더 이상 양반만의 몫이 아니라 누구나 다 성공해야 하는 막대한 권리이자 막대한 의무가 되었고 근대적 감각의 취미와 취향이 자리 잡았다.

위생과 건강한 몸은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고 성이 유희와 여흥의 대상으로 부상했고 민족과 국민이라는 가치가 일상에서 구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가 상품을 통해 이루어졌다. 광고는 이러한 가치들을 삶의 표준으로 제시하며 소비로서 상품을 획득함으로써 함께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선전했다.

 
“상품도, 상품 소비도 충분히 낯설었을 때 광고는 새로운 가부장으로 등장한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의식주를 공급하고 삶의 윤리와 철학까지 가르치고 있었다.”

자본의 침입을 맞아 신분 사회는 붕괴되었고 사람들은 소비력에 따라 재정렬된 새로운 위계로 급속히 편입됐다. 모든 가치가 상품으로 소비되는 시대는 누구나 양반이 될 수 있는 세상, 그야말로 ‘돈만가지면 참 좋은 세상’이었다.

광고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람들의 상승 욕구를 자극했다. 상품을 갖춤으로써 영위할 수 있는 상층의 삶을 펼쳐 보였다.

“광고가 소비의 욕망과 꿈을 판다면 많은 피지배 계급은 광고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들에 속했다.”(67쪽)

소비 ‘대중’을 매혹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지닐 만한 원초적 욕망을 일깨워야 했다. 다섯 가지 가치, 즉 출세·교양·건강·섹스·애국은 오랫동안 인간 삶의 기저에 자리했던 가치였고 광고는 영리하게 이를 활용했다.

‘광고의 홍수’라는 말이 식상한 관용구처럼 쓰이는 오늘날에도 이 다섯 가지 가치는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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