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독법의 길라잡이…허균의 ‘독노자장자순자한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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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독법의 길라잡이…허균의 ‘독노자장자순자한비자’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5.11.19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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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④ 옛것과 새것의 변통과 통섭…법고(法古)와 온고(溫故)의 미학⑦
▲ 허균은 당시 유학자들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당한 한비자의 글과 문장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

[한정주=역사평론가] 앞서 소개했던 ‘문설(文說)’에서 허균은 좌구명과 장자와 사마천과 반고는 그들 각자의 글을 썼다면서 자신은 옛사람들을 모방하거나 답습하거나 표절했다는 말을 듣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문장가는 자신만의 글, 즉 ‘창신(創新)의 미학’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허균은 ‘법고(法古)’를 바탕으로 삼지 않는다면 ‘창신(創新)’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법고(法古)가 지극하면 반드시 창신(創新)이 나온다고 여겼다.

이러한 까닭에 허균은 유학 경전이나 성리학 서적은 물론 그들이 이단이요 요서(妖書)라고 배척하고 멸시한 여러 제자백가(諸子百家) 서적까지 두루 섭렵하고 독해해 그 책 속에 담긴 철학은 물론 그 철학의 논법(論法)과 수사학(修辭學)까지 철저하게 논파했다.

그 결과 당시 유학자들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당한 한비자의 글과 문장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

그리고 “그런데 유독 한비자의 글만은 격식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명확하다. 비슷한 종류의 사건들을 서로 연결하여 서술하는 데 능숙하고 실제 사정에 들어맞는다. 문장에 관한 일로 논한다면 한비자는 대가(大家)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의 저술 가운데 ‘세난(說難)’편과 ‘팔간(八奸)’편은 더욱 좋다. 시험 삼아 그 열고 닫고 억누르고 치켜들고 내닫고 머무르고 끊고 맴도는 부분을 보면 말로 드러내지 않고도 후세의 글을 짓는 사람들에게 걸어 잠그고 얽어매는 문장 작법의 실마리를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본래 고문은 꾸미지 않고 순박한 문체를 지니고 있었는데 한비자에 와서 비로소 오묘한 계책을 갖추게 되었다”라고 극찬했다.

그런 의미에서 허균의 ‘독노자장자순자한비자(讀老子莊子荀子韓非子)’는 ‘법고(法古)’하면서 ‘창신(創新)’할 줄 알았던 고전 독법(讀法)의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에 소개한다.

“어떤 사람이 『노자(老子)』의 장(章)을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으나 본래 글의 뜻이 끊이지 않았는데도 억지로 끊은 부분이 있다. 반드시 글 전부를 연결해 읽어야 뜻을 깨달을 수 있으므로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세상에서는 『노자』를 여섯 가지 경전에 포함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고 할 수 있는 대도(大道)를 논한 곳에서는 오묘할 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하다고 할 수 있다.

『노자』에서는 여섯 가지 경전 중 하나인 『주역(周易)』이나 『중용(中庸)』에서도 말하고 있지 못한 부분을 집어내어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노자』가 매우 뛰어나 유학의 경전과 나란히 서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신통하고 묘한 일이다.

후세에 노자를 따르는 무리들이 그 학술을 신비스럽게 치장했고, 다시 세월이 흐를수록 수련·복식·부록·제초 등의 괴이하고 황당한 방법을 만들었다. 그래서 세상을 현혹하고 사람을 속이는 나쁜 일이 횡행하게 되었다.

세상에서는 노자를 따르다면서 혹세무민하는 무리들과 더불어 노자까지 싸잡아 비방하는데, 이 같은 괴이하고 황당한 말과 행동이 어찌 노자가 말한 사상이 본래 지니고 있느 뜻이겠는가? 노자의 글은 곧 경(經)이고, 뜻은 곧 전(傳)이고, 인간의 도리를 논할 때는 곧 하늘의 핵심부를 깨뜨렸다. 나로서는 도저히 윤곽조차 잡을 수 없는 경지다. 참으로 노자는 용과 같은 인물이라고 하겠다.

나는 어렸을 때 『장자(莊子)』를 읽었다. 그러나 그 뜻을 알 수 없어 단지 글을 따라가고 장을 따와 문장을 꾸미는 방법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러다가 중년에 접어들어 다시 『장자』를 읽었는데, 그 미묘함이 헤아려 알기 어렵기도 했지만 이미 그 속의 우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죽음과 삶을 나란히 보고, 그 얻고 잃음을 똑같이 다룬 부분은 귀하게 여길 만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장자』를 읽어 보니 이익을 탐내지 않아 담백하고 고요하며 더럽거나 속되지 않은 사상이 은연중에 부처님의 가르침과 서로 닮아 있었다. 아득히 멀고 황당한 언사가 바른 말이라고 할 수는 없어서 깊이 있게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본뜻의 실마리를 알기 어렵다.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은 『장자』 ‘대종사(大宗師)’의 ‘안자(안연)가 가만히 앉아서 물아(物我)를 잊었다’라는 구절을 두고 강하게 비난하지만, 그들이 경전으로 삼는 『예기(禮記)』에도 ‘앉으면 제사를 지내듯이 하고, 일어서면 제사를 모시는 시동처럼 하라’고 했다.

▲ 나이 43세 때 전라도 함열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시문(詩文)과 논설(論說), 비평(批評) 및 기록 등을 모아 엮은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또 『논어(論語)』에서는 ‘안자는 하루 종일 어리석은 사람인 듯 행동한다’고 했다. 이 말들이 ‘앉아서 물아를 잊어버렸다’라는 구절과 무엇이 다른가? 이 또한 부연한 말일 뿐 허튼소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장자』가 ‘주공과 공자를 비난했다’는 말 역시 잘못이다. 노담(노자)은 장자의 스승이다. 그런데 장자는 진일이 조문한 일을 핑계 삼아 노담을 비방했다. 이런 행동은 우스갯소리나 거짓말을 잘하는 장자의 평소 태도에서 나온 것이지 진실로 비방했다고 할 수는 없다. ‘천하’편에서 유가를 으뜸으로 언급한 내용에서 미루어 보면 장자가 주공과 공자를 존경하고 숭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순경(순자)이 노담(노자)을 배척하면서 ‘굽힐 줄은 알았지만 펼 줄을 몰랐다’라고 했다. 또한 장주(장자)를 배척하면서 ‘하늘의 도에 가려서 사람의 도리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 순자의 학설이 참으로 타당하다고 하겠다. 순자는 왕도(王道)를 높이고 패도(覇道)를 천하게 여겼고, 공자를 숭상하고 이단을 물리칠 줄 알았다. 맹자 이후 유학의 제일인자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타고난 자질이 어리석고 망령되어 함부로 진리를 안다고 자처해 증자·자사·맹자의 학문을 폐하고 곧바로 공자의 정통을 이어받고자 했다. 그래서 주장을 내세우고 가르침을 펼 때에도 다른 유학자들과는 차이를 두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고 한 반면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고 말해 맹자를 꺾으려고 하였으나 끝내 이길 수는 없었다.

순자가 학문의 계보에 따라 자사와 맹자의 전통을 지키고, 홀로 고고한 논설과 특별한 변론을 펼치는 일에 힘을 쏟지 않았다면 조그마한 흠이 있다면서 배척하거나 선택한 것이 정확하지 못하고, 말이 상세하지 않다는 한유의 나무람이 나왔겠는가? 지나치게 거만하고 어리석어서 스스로 잘난 체하며 제멋대로 했기 때문에, 훗날 이사와 한비자에게로 전해져 크게 변질되었다. 애석한 일이다.

선진(先秦) 시대 제자백가의 글 가운데 『노자』와 『장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체로 난잡하거나 어렵거나 혹은 종잡을 수 없다. 그런데 유독 한비자의 글만은 격식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명확하다. 비슷한 종류의 사건들을 서로 연결하여 서술하는데 능숙하고, 실제 사정에 들어맞는다. 문장에 관한 일로 논한다면, 한비자는 대가(大家)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의 저술 가운데 ‘세난(說難)’편과 ‘팔간(八奸)’편은 더욱 좋다. 시험 삼아 그 열고 닫고, 억누르고 치켜들고, 내닫고 머무르고, 끊고 맴도는 부분을 보면 말로 드러내지 않고도 후세의 글을 짓는 사람들에게 걸어 잠그고 얽어매는 문장 작법의 실마리를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본래 고문은 꾸미지 않고 순박한 문체를 지니고 있었는데 한비자에 와서 비로소 오묘한 계책을 갖추게 되었다. 한비자의 논리와 학설은 법가 사상가인 상앙과 신불해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는데, 엄격하고 각박한 점에서는 그들을 뛰어넘었다.” 허균, 『성소부부고』, ‘노자·장자·순자·한비자를 독해한다(讀老子莊子荀子韓非子)’

허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전과 역사서를 독서하고 체험하며 사색하는 과정 없이는 ‘법고(法古)’도 ‘창신(創新)’도 없을 것이다.

필자가 여기에서 ‘독서와 체험과 사색’을 함께 거론한 까닭은 대개 우리는 견문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정신의 몫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또한 육체의 몫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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