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강세황의 진경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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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강세황의 진경 산문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6.01.06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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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⑤ 진경(眞景)의 미학…글은 살아있는 풍경이다⑥
▲ 1781년 한종유가 부채에 그린 강세황의 69세 때의 초상(왼쪽)과 강세황의 『표암유고』 권1 시(詩) 부분.

[한정주=역사평론가] 조선 최고의 화가인 김홍도를 어릴 때부터 가르친 그림의 대가(大家)답게 강세황의 진경 산문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다.

전북 부안군에 위치하고 있는 해안인 격포(格浦)를 유람하면서 쓴 진경 산문이 대표적인 경우다.

“오시에 해창에 이르렀다. 해창은 변산 바깥에 있다. 그 앞이 포구와 가까웠다. 포구 밖의 기이한 봉우리는 뾰족하기가 바짝 세운 붓과 같았다. ‘바다 위 뾰쪽한 산 칼날과 같네’라는 시구를 읊조리며 유주의 산수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만조라 물이 점점 불어나 앞길이 물결에 잠겨 있어서 나아가려 해도 갈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 같이 유람하던 나군과 함께 한가히 이야기하면서 조수가 빠지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해가 기울자 물살이 점차 줄므로 말을 재촉하여 떠났다. 길은 매우 질척거렸으며 깨진 돌과 조개껍질이 땅 가득히 쭉 깔려 있었다. 산기슭이 조수에 씻기어서 바위들이 다 드러나 있었는데 영롱하면서도 기묘하여 마치 조각한 듯 아름다웠다. 어떤 곳은 십 리 넘게 쭉 이어지기도 했고, 더러는 끊겼다가 다시 나오기도 했다. 만일 미불을 여기에 불러온다면 일일이 다 절할 겨를이 없을 것이었다.

포복해서 지나가려니 그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조수가 다 빠지지 않은 곳도 있어서 말이 물속을 걷기도 했다. 말 앞의 검푸른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물의 신선이 용을 타고 수면을 다니더라도 이보다 더 낫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따금 조수를 피해서 봉우리에 오르기도 하고, 더러는 진창을 만나 정강이까지 빠지기도 하였다. 석양이 바다에 가라앉자 엷은 구름이 그것을 감쌌다. 빛깔은 연지 같고 크기는 수레바퀴 같았다. 일출과 비교해보면 어느 것이 더 기이한 장관인 줄 알지 못하겠다.” 강세황, 『표암유고』, ‘격포유람기(遊格浦記)’  (강세황 지음, 김종진‧변영섭‧정은진 옮김,『표암유고』, 지식산업사, 2010. 인용)

아울러 동작나루를 마주하고 있는 한강 가에 있던 자신의 별장 주변 풍경을 묘사한 ‘두운지정기(逗雲池亭記)’는 빠뜨리고 가기에 너무나 아까워 소개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멋들어진 산문이다. 글은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한양성 남문을 나와 꺾어 약간 동쪽으로 10리를 채 못가면 둔지가 있다. 봉우리나 바위 골짜기는 없는데 산이란 이름은 있고, 둔전은 없는데 둔전이란 이름은 있지만, 이것은 진실로 따져 물을 것이 없다.

들길은 구불구불하고 보리가 웃자란 가운데 수백의 농가가 있다. 두운지정은 그 마을을 서북쪽에 자리 잡았으며 수십 칸 기와집이라 앉거나 눕는 것을 감당할 만하다. 한 칸짜리 작은 누대에서 크고 작은 두 못이 굽어보이는데, 연을 심어 놓아 물고기를 기르고 축 늘어진 버드나무가 둘러싸고도 있다.

앞으로는 관악산과 동작나루를 마주하고 있다. 첩첩의 봉우리는 병풍 같고 흰 모래사장은 명주 같다. 뜰에는 온갖 꽃이 펼쳐져 있고 동산에는 밤나무 숲이 있으니 때때로 들꽃을 따기도 하고 덜 익은 밤을 꺼내기도 할 수 있다. 진실로 오래도록 소일하면서 남은 생을 보낼 만한 곳이다.” 강세황, 『표암유고』, ‘두운지정기(逗雲池亭記)’  (강세황 지음, 김종진‧변영섭‧정은진 옮김,『표암유고』, 지식산업사, 2010.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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