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닮은꼴’ 삼성과 일본의 사과·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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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닮은꼴’ 삼성과 일본의 사과·보상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6.01.1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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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약속 장소인 광화문 방향으로 걸어갈 때면 일본대사관 앞에 앉아 있는 ‘소녀상’을 지나치게 된다.

연일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요 며칠 동안은 일부러 그곳을 피해 돌아간다. 소녀상과 그곳을 지키고 있는, 20여명의 밤샘 노숙농성 젊은이들과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수요집회는 지난 6일 24주년을 맞았다.

13일 오전 11시에도 이곳에서는 어김없이 제1213차 수요집회가 열렸다.

지난 연말 한국과 일본 정부가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합의문을 발표했지만 목소리는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일본은 사과와 함께 배상도 이뤄졌다는 주장과 함께 한술 더 떠 소녀상 이전까지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같은 시간 강 건너 남쪽에서는 또 다른 노숙농성과 집회가 진행됐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회원과 피해자 가족들이 이날 서초동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전자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 발표 및 사과·보상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가진 것이다.

이들의 노숙농성은 이날로 99일째다.

삼성전자는 전날 직업병 문제와 관련 ‘재해예방대책’에 관한 최종 합의가 이뤄졌다며 “보상과 사과가 진행된 데 이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해 오던 예방문제에 대해서까지 완전히 합의를 이뤘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사과·보상 문제 해결’을 주장하고 있는 반올림과는 달리 ‘완전한 합의’를 주장하며 확연한 시각차를 드러낸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1000억원의 사내 기금을 조성해 자체적인 보상에 착수했고 지금까지 150여명의 신청자 중 100여명에게 보상이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또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도 피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반올림은 “재발방지대책 합의는 세 가지 중 하나를 이뤘을 뿐”이라며 “삼성은 사과와 보상에 대한 교섭 약속을 이행하라”고 주장했다.

삼성의 사과에는 직업병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내용 없이 두루뭉술하게 자신들의 임의로 정한 사과 내용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상도 대상을 직접 심사하고 내용까지 정하는 차제 절차를 강행하는 등 방식과 내용 모두 독립된 외부기구에 의한 조정권고안의 취지와 내용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일본과 삼성의 전혀 다른 두 개의 사안에서는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가해자인 일본과 삼성은 ‘합의 끝’을 선언하고 있지만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반올림은 ‘합의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 입장에서 “이 정도면 됐지 뭐” 하는 식이다.

그러나 합의라는 것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 가능한 것인가. 피해자는 합의가 아니라는 데 가해자가 합의라고 주장한다고 그것을 합의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또 다른 폭력이고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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