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왕후 생애 닮은 문·무인석들…『조선 왕릉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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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왕후 생애 닮은 문·무인석들…『조선 왕릉을 가다』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6.01.1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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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21대 왕 영조의 문관은 역대 조선왕릉의 문인석이 풍채 좋은 거구의 모습인데 비해 어깨가 좁고 나약하다. <사진=문화재청>

조선의 7번째 왕 세조는 살아생전 자신이 묻힐 터를 마련하고 풀 한 포기 나무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5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활엽수림이 도도하게 앞다투어 솟아오른 광릉이다.

조선왕릉 4대 명당으로 꼽히는 이곳에는 세조의 정희왕후가 잠들어 있다.

같은 산줄기에 좌우 언덕을 달리해 왕과 왕비를 각각 따로 모시고 능 중간 지점에 하나의 정자각을 세우는 형식인 동원이강릉(同園異岡陵)의 형태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이 세조, 오른쪽 언덕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세조는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명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전까지 석실로 되어 있던 능은 회격(灰隔)으로 바꾸었고 봉분 주위의 병풍석은 생략하면서 병풍석에 새겼던 십이지신상은 난간석의 동자석주에 새겨져 있다.

신간 『조선 왕릉을 가다』(범우)는 천성우 작가가 태조 이성계부터 조선왕릉 40기와 연산군·광해군 묘를 답사해 엮은 조선왕릉 답사기다.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왕릉의 석물들을 멀리서만 바라보고 문·무인석의 생김새와 표정들도 모두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조선왕릉 186기의 모든 문·무인석들은 능 주인의 생애와 깊은 관련이 있고 생김새 표정도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조선 21대 왕 영조의 문관은 역대 조선왕릉의 문인석이 풍채 좋은 거구의 모습인데 비해 어깨가 좁고 나약하다. 마른 몸매에 곡령대수 소매자락 주름도 간략하게 홀을 턱에서 뚝 떨어져 잡고 있는 손가락마저 어린애처럼 가날프다.

 

콧대도 벙벙하게 내려와 인중이 짧은 입, 위 눈까풀이 아래로 눈동자를 반쯤 덮은 눈으로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아버지의 회한을 보았다.

반면 반대쪽 정순왕후의 문관은 역팔자로 뜬 눈 아래 콧중배기 뭉뚱하게 멈춘 코 끝에 달라붙은 얇은 입술 째려보듯 쳐다보는 눈의 선이 칼날 같아서 섬뜩하다고 적고 있다.

사도세자의 손자인 순조 때까지도 수렴청정 권력을 누린 악명 높은 왕후의 성정을 잘 표현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자연과 동화돼 있는 석물들의 생생한 표정들을 보고 역사에는 없는 눈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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