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앞에선 무형문화재 활성화 계획 발표·뒤에선 기능보존회 예산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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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앞에선 무형문화재 활성화 계획 발표·뒤에선 기능보존회 예산 삭감
  • 박철성 칼럼니스트·다우경제연구소 소장
  • 승인 2016.02.19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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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성의 핫 키워드] 서울시무형문화재기능보존회 지원비 삭감하며 “받아들일 수 없으면 그만둬라”

서울시 무형문화재기능보존회 지원비가 1억5000만원을 삭감됐다. 그 폭이 무려 26%나 된다.

특히 서울시 담당 공무원은 기능보존회 장인들과 관계자를 업신여기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19일 서울시 무형문화재기능보존회에 따르면 서울시는 2016년도 기능보존회 지원비 삭감내용을 지난 1월11일 알려왔다. ‘삭감하니 알아서 사용하라’는 식의 일방적 이메일 통보였다.

기능보존회는 한숨만 내쉬고 있다. 예산에 맞춰 보존회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운영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통상 예산 삭감은 해당연도 시작 전에 결정된다. 이번과 같이 신년이 시작된 뒤 지원비를 삭감하는 경우는 전에 없던 행정이다.

그만큼 서울시 역사 문화재과에 다급한 사연이 있었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면세점에서 전통공예품을 판매하는 신규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여기에 1억5000만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보존회 지원비를 삭감했고 이를 신규 사업에 투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김복곤 기능보존회 회장과 관계자들이 서울시 역사 문화재정책팀을 방문했다. 지원비삭감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확인을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담당 공무원 A씨는 김 회장에게 “벽창호”라며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우리도 유럽의 마스터(master)들처럼 제대로 대우해주면 안되겠느냐?”고 울분을 토하면서 “담당 과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이때 해당 부서 B과장이 들어왔다. 그는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담당 공무원에게 큰소리를 치느냐”면서 “장관도 과장과 다이렉트로(곧바로) 통할 수 없고 담당 직원이나 주임을 거치는데 나를 직접 보자고 할 수 있느냐?”면서 김 회장을 호통쳤다.

허탈하게 자리를 뜨는데 A씨가 “면세점 입점이 쉽게 되는 일인 줄 아느냐”면서 “우리 서울시 돈 1억5000만원이 지원돼야 가능하다”고 소리쳤다.

결국 기능보존회에서 삭감한 예산 1억5000만원의 용처가 드러난 것이다. 서울시가 면세점 신규 사업을 위한 ‘돌려막기’ 용도였다던 셈이다.

기능보존회에 대한 모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며칠 뒤 김 회장 일행이 다시 시청을 방문했다. 공무원들을 설득시켜 삭감된 지원비를 복원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A씨에게 또 수모를 당했다.

김 회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1억5000만원이나 삭감하겠다는 통지를 받아들이기가 너무도 힘들다. 더욱이 전년 연말도 아니고 항상 그런 일은 미리 의논하거나 언질을 주지 않았느냐? 이미 새롭게 2016년도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데 갑자기 1월 중순의 삭감 통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A씨가 김 회장의 말을 받았다.

“지원비에 대한 업무는 예산과에서 한다. 작년에는 서울시 의원들이 올려줬다, 시의원들이 문화재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그런 거 같다. 올해 물가상승률을 감안해서 전승지원금 10%를 올렸잖느냐? 그런데 사업비를 작년과 같은 수준으로 가려면 어딘가 모르게 다른 쪽은 삭감돼야 한다. 무형문화재 보존회 지원비 올려주려면 요즘처럼 추운 날에 시장 상인들이 물건 팔아서 세금 내는 거 더 걷어야 하는 것이다.”

A씨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봤을 땐 선생님들 안 어렵다. 이거 못 받아들이겠다면 무형문화재 하지 않으면 된다. 다른 사람이 하면 된다. 선생님들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거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못지않게 자랑스러울 것이다. 우리도 서울시 공무원인 점 중앙 못지않게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30년 동안 시를 위해 일해도 우리 서울시 공무원들 월급 얼마 받는 줄 아느냐? 그런데 선생님들 얼마 가져가지? 우리 직원들 매우 유능하다. 시 공무원이 선생님들 한번 만나러 나가면 얼마 받는지 아느냐? 우리는 출장비 고작 1만원 받는다. 차량이라도 이용할라치면 그마저도 없다. 그런데 선생님들 하루 나오면 얼마 받느냐? (그나저나) 우리한테 받아간 돈 외에 자체적으로 운영한 돈이 있긴 하느냐? 우리 돈으로만 운영하잖느냐? 서울시 돈, 눈먼 돈 아니다.”

그러나 A씨는 필자와의 카카오톡 문자 인터뷰에서 “전수시설 운영비가 작년보다 1억5000만원 감소한 것은 한정된 예산의 조정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면서 “월별로 보유자와 전수조교 등에게 지급하는 전수교육비는 10% 상향 조정했고 무형문화재 축제 예산 3억원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기능보존회 장인들이 박원순 시장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공개됐다.

“담당 공무원들부터가 장인들을 불신하고 숫자만 앞세우는 실적 위주의 잣대로 저희를 대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근간을 평생 지켜온 장인들은 지금 이런 굴욕적인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노임을 벌러 나오느냐는 시선을 담당 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호소문이 공개된 이튿날인 지난 16일 역사문화재과에서 보도자료를 내놨다.

내용에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활성화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이었다. 무형문화재 발굴 다양화·원형 보존·전승기반 강화, 기능 보유자 영상 기록화(다큐멘터리 제작) 등이 골자였다.

특히 전승 단절이 우려되는 80대 이상 보유자와 명예보유자 등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기록화 사업을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서울시에서 급조해 내놓은 방안이란 게 고작 영상기록으로 남기겠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신년사가 떠오른다.

지난 1월4일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시 본청, 사업소, 자치구, 시의회 사무처, 지방공사·재단 등 직원 3800여명이 모인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우리 스스로는 더욱 낮추고 시민은 더욱 귀하게 모시는 민귀군경(民貴君輕)의 각오로 공리공론과 탁상행정을 배척하고 실질을 숭상해 실행에 옮기는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자세로 오직 시민의 삶, 오직 민생을 살리는 길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에 와 닿는 참 좋은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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