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계층은 인정하지만 분배는 부차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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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계층은 인정하지만 분배는 부차적 문제?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4.1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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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독일 사회철학자와 미국 정치철학자의 논쟁

▲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왼쪽)과 독일의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
네오나치즘을 연상시키는 ‘일베’와 같은 극단주의, 88만원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불협화음, 성소수자나 대형마트 계산원, 텔레마케터 등의 감정노동자 등등 인정과 무시를 둘러싼 사회 적 계층갈등이 확대되고 표면화되고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고유한 정체성과 차이가 부각되면서 한편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철학 개념인 ‘인정투쟁’이이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다른 한편에선 인정을 강조하는 것이 복지국가나 경제민주화 같은 분배 정의에 대한 요구를 간과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문제는 구조화된 경제적 불평등에 있는데 개개인의 정체성과 특수성에 집착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신간 『분배냐, 인정이냐?』는 이 같은 우리 사회의 화두에 대한 독일의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와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치열한 논쟁을 담고 있다.

상대의 주장이 가진 약점을 드러내고 각자의 주장을 방어하면서 두 철학자의 논쟁은 옳음과 좋음을 둘러싼 도덕철학적 문제, 자본주의 경제와 문화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회이론적 문제, 계급 정치와 정체성 정치의 관계에 대한 정치철학적 문제로 발전되고 거대한 비판이론 패러다임 논쟁으로 확산된다.

이를 통해 두 철학자는 기존의 분배 정의론이나 공동체주의가 가진 한계를 넘어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실천적인 정의론을 제시한다.

먼저 두 철학자는 분배와 인정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여기거나 분배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경제주의적 시각을 경계한다.

그러나 프레이저가 분배와 인정을 밀접히 연관돼 있지만 환원될 수 없는 관계로 보고 이차원적 정의관을 제안하는 데 반해 호네트는 분배를 인정의 표현으로 보고 불평등한 분배의 심층적 토대인 사회적 인정 질서에 주목한다.

존 롤스의 『정의론』(1971)에서부터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2009)에 이르기까지 정의에 대한 논쟁은 크게 보아 두 대립축 사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존 롤스나 로널드 드워킨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면서 분배로서의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찰스 테일러나 마이클 샌델로 대변되는 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좋은 삶을 강조하면서 공동선으로서의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정의론은 오랫동안 서로 대립해왔지만 실천과 결부되지 못한 채 이론적 논의로만 남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분배 정의론은 당장의 현실과 무관한 초역사적 모델에 머물렀고 공동체주의는 사회통합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인해 개인을 무시하는 현실 긍정론에 그쳤기 때문이다.

낸시 프레이저와 악셀 호네트는 이 같은 분배와 인정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고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인 담론을 넘어서는 ‘현실과 고군분투하는’ 정의론을 제안한다.

두 철학자는 정의에 관한 논의를 단지 도덕철학적 차원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론뿐 아니라 실제적인 정치적 실천과도 정교하게 결합시킨다. 즉 공허한 도덕적 수사로서의 정의론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규범적 대안과 그 방향을 위한 사회비판적 정의론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두 철학자의 정의관이 서로 엇갈림에도 그들은 이론과 실천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시당하거나 배제된 사람들의 투쟁이 정의를 실현하는 역사적 힘이며, 정의론은 이러한 실천이 가진 도덕적 정당성을 보여줄 때 추상화되거나 현실에 부합하지 않고 현존 사회를 비판하는 규범적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악셀 호네트가 “비판적 사회이론의 정의관은 그 수혜자들이 제시한 정당화 가능한 목적을 구체화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를 의미한다.

프레이저는 분배를 중심으로 했던 정의 담론이 한편으로는 분배 요구들로, 다른 한편으로는 인정 요구들로 갈라지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은 잘못된 것이며 “오늘날 정의는 분배와 인정 모두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면서 불평등 분배로 차별받는 동시에 외모로 인해 무시당하는 이중적 불의를 겪는다.

이렇듯 분배나 인정 한 가지만으로는 오늘날의 복합적 불의를 파악할 수 없기에 분배와 인정을 통합하는 ‘이차원적 정의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프레이저는 ‘인정’ 개념을 자아실현 모델이 아니라 분배 정의와 같은 의무론적 도덕성과 관련되는 ‘인정의 신분 모델’로 개념화한다.

이로써 분배와 인정은 만인의 동등한 사회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상호주관적 조건으로 이해되며 포괄적인 규범적 틀 안에 포섭된다.

프레이저는 이러한 도덕철학적 정의 개념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회이론과 연결시킨다. 지구화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계급 구조와 신분 질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프레이저는 경제주의, 문화주의, 반(反)이원론, 실체적 이원론 등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분배와 인정 사이의 환원 불가능성, 경험적 분열, 실천적인 뒤얽힘을 함께 파악할 수 있는 ‘관점적 이원론’만이 점차 확대되어가는 계급 불평등과 위계적 신분관계의 중첩 현상을 파악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는 분배가 없이는 그 어떤 인정도 없고 인정이 없이는 그 어떤 분배도 없다. 자본주의는 경제와 문화라는 서로 구별되지만 긴밀히 연관되는 두 가지 불의의 차원들과 종속의 질서들을 체계적으로 고안해낸 역사적 사회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이론과 규범적 정의론을 내적으로 연결시키면서 프레이저는 정치이론의 차원에서 예컨대 기본소득과 같은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을 주장한다. 이를 통해 독백주의와 절차주의의 한계를 넘어 동등한 참여의 원리를 제도화하는 민주적 정의론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두 철학자의 논쟁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적·사회적 문제들의 본질을 새로운 시각과 개념들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 기반을 둔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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