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는 성장 멈춘 미래의 데쟈뷰”
상태바
“2008년 금융위기는 성장 멈춘 미래의 데쟈뷰”
  • 이성태 기자
  • 승인 2014.04.11 1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태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

 
경제학자 케네스 보울딩은 “유한한 세계에서 급속한 성장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이거나 경제학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자원이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경제 성장은 불가능하다.

현재 지구는 지구의 능력보다 40%를 웃도는 140% 규모로 운용되고 있다. 지금의 경제·사회적 규모를 유지하려면 지구가 1.4개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30년에는 지구가 하나 더 있어야 한다.

인류의 수요가 지구의 한계 능력을 넘어선 것은 1986년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 지구 생태계는 고장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

지구 생태계가 인류에게 제공하는 25가지 주요 서비스 중에서 16가지는 이미 지속가능성을 상실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동안 미래 세대의 몫까지 무리하게 가져다 쓴 결과다.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의 책임자를 지낸 환경운동가 폴 길딩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는 생태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주범으로 전 세계의 끊임없는 ‘성장 지상주의’를 꼽는다.

성장은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경제와 사회를 떠받치는 절대적인 목표나 다름없다. 성장이 없으면 소득 증대도 기대할 수 없고 소득이 늘지 않으면 소비도 늘지 않는다. 또한 소비가 줄어들면 생산과 고용·성장을 정체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런 악순환은 곧 사회와 정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성장은 개인의 성취와 만족감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 구실도 한다. 돈과 물품을 더 많이 가지면 만족감도 더 커질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신성한 독트린으로 모든 사람들을 헤어날 수 없는 중독 상태로 빠트린 마약과 다르지 않다. 성장 지상주의가 우리의 삶과 사회문화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 성장 모델은 더 이상 쓸모가 없으며 성장의 종말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의 책임자를 지낸 환경운동가 폴 길딩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폴 길딩 교수는 그의 저서 『대붕괴』에서 지구 자원의 한계를 벗어나 위험한 상태에서 운용되는 성장 위주의 경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존 스튜어트 밀, 애덤 스미스 등 경제이론과 시장자본주의 창시자들도 이미 성장의 종말을 불가피한 현상으로 예측했다는 사실이다.

즉 성장에 반대하는 논리는 자본주의 체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급진세력의 주장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경제학자들이 오래전부터 모든 경제가 당면하게 될 한계로 인식했던 것이다.

국제생태발자국네트워크는 자원 효율성 제고와 같은 여러 가지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성장 추세에 비춰볼 때 세계 경제 규모는 2030년 지구 능력의 200% 수준으로, 2050년께에는 300~400% 수준으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가 소비지향적 성장을 추구하면서 생태계의 수용 능력을 넘어선 압박이 수십 년간 지속되자 지구는 이미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기후 변화가 심해 가뭄과 홍수, 극심한 추위와 더위가 되풀이되는가 하면 북극의 만년설이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해양 산성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며 시베리아의 툰드라 지역에서는 지표면의 얼음이 녹으면서 메탄가스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동토 아래 잠겨 있던 메탄가스는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처럼 생태계가 급격한 변화와 함께 위기를 맞게 되면서 세계 경제도 크나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는 자연환경이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길딩 교수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바로 생태계 위기와 맞물린 전 세계적 경제 위기, 즉 앞으로 벌어질 ‘대붕괴’의 시작이라고 판단한다. 생태계의 극심한 변화와 파괴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곧 ‘모든 것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구 전체의 시스템을 위협하며 ‘대붕괴’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대붕괴』에서 2008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 환경이 허물어지면 경제가 어떻게 붕괴하는지, 우리에게 미치는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들려준다. 이런 전망은 시스템의 위기와 경제 침체, 사회적 긴장이 뒤엉킨 미증유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대붕괴가 문명의 붕괴라기보다는 인류의 발전 과정에 나타난 하나의 와해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길딩의 믿음이다.

이는 기술과 비즈니스, 경제 모델 측면에서 엄청난 혁신과 변화를 가져오고 인류의 발전 면에서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기후 변화는 우리에게 닥친 가장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대붕괴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고, 이를 지혜롭게 극복한다면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 경제의 몸집이 지구의 한도를 넘어설 정도로 비대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두 가지 붕괴 지표가 나타났다.

석유와 식량으로 대변되는 자원과 식량의 가격 급등과 생태계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변화가 그것이다. 이후 지속가능성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의는 경제 문제 속으로 확실하게 파고들었다.

극한적인 기후 상황과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식량 가격이 급등하고 채산량과 채유 속도가 감소해 공급이 부족해지자 석유 가격 역시 유례없는 수준으로 뛰었다.

이로 인해 경기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 조짐이 보있자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격변 상황이 벌어졌다. 또한 금융 시스템의 복잡성과 탐욕, 상호 연결성 때문에 이 시스템이 위기를 맞으면서 세계 금융시장도 흔들렸다.

2008년 하반기에 은행들이 파산하면서 세계 경제 위기는 우리 사회와 삶을 더 한층 위협했다. 소리 없이 밀려온 경제․사회적 허리케인은 그렇게 굉음을 내며 우리 삶을 뒤흔들어놓고 성장도 멈추어 세웠다.

폴 길딩 교수는 2008년의 상황이 우리에게 대붕괴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고 판단한다. 자원의 한계와 수요공급의 불균형과 생태계 변화가 경제에 어떤 파멸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것도 얼마나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영향을 미치는지 또렷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우리가 시스템상의 전환을 맞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사례이기도 하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처럼 “어머니 같은 자연과 아버지 같은 탐욕이 동시에 부딪친 것”이 2008년이었다.

그러나 길딩은 지구 생태계가 너무 거대한 규모로 스스로 움직이면서 작용하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황(극적 전환점)에 이르기 전에 우리가 이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대표적인 해결책이 길딩과 『성장의 한계』의 집필자 중 한 사람인 요르겐 랜더스 교수가 함께 고안한 ‘1도 전쟁’이다.

이 전쟁은 한마디로 전 세계 연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수준에서 1도 상승까지만 허용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문가들이나 학자들은 대부분 섭씨 2도의 기온 상승을 허용하자고 주장하지만 길딩과 랜더스 교수는 2도 상승도 위험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1도 전쟁은 전시체제와 비견되리만큼 극적인 대응으로 모두 3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기후 전쟁 단계(1~5년)로 5년 안에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50% 감축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대전 수준의 총동원령이 내려져야 한다.

2단계는 기후 중화 단계(5~20년)로 온실가스 배출량의 50%를 감축시킨 뒤 다시 20년이 될 때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기후 회복 단계(20~100년)에서는 기후의 안정화와 세계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이루기 위해 오랫동안 마이너스 배출(대기 속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것)을 지속해 기후를 산업혁명 이전의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린다.

1도 전쟁 계획에서 초점은 첫 5년 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신속하게 절반으로 감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1도 전쟁의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또한 기후 전쟁에 따른 경제적 비용은 기후 변화를 방치했을 때 치러야 할 비용에 비하면 훨씬 적을 것이다. 기후 전쟁은 실제 전쟁과 달리 오히려 수많은 인명을 살릴 수 있는 그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전쟁이자 ‘대붕괴’를 막을 수 있는 극적인 처방이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삶은 모두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제 성장은 한계에 부딪쳤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성장이 빈곤과 기아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극단적인 수준의 불평등과 불공평도 용인해주고 있다.

국가나 기업의 모든 경제활동은 ‘양’으로 평가받고 개인들은 더 많이 소유하면 더 큰 만족과 행복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 돈을 더 많이 벌고 재산을 더 많이 늘리는 것도 물건을 더 많이 사기 위해서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면서 부는 아래로 재분배되기보다 중력을 무시한 채 위로만 집중됐다.

세계 경제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 성장한다고 해도 전 세계 인류가 기아에서 벗어나는 데는 130년이 걸린다는 통계에서 알 수 있듯 현 상황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혜택을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개인의 소득도 일정 수준이 넘으면 더 이상 만족과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실험 결과도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지금 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활동의 평가도 ‘양’이 아니라 삶의 ‘질’로 평가해야 한다.

길딩 교수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을 주목한다. 당시 전시체제로 돌아선 영국은 불평등성이 급속하게 줄어들고 개인 소비도 급격히 감소했으며 물질적인 생활수준도 낮아졌지만 국민들의 건강은 급속하게 향상됐다. 공평성이 강화되면서 국민 대부분의 건강이 좋아지고 여러 사회 지표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됐던 것이다.

 
기업들도 조지프 슘페터의 말처럼 “끊임없이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내부에서 경제 구조를 끊임없이 변혁하는” 과정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경제는 자연환경 속에서 운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는 새로운 경제로 탈바꿈해야 한다. 참된 의미의 경제 탈바꿈이란 삶의 질을 추구하고 전 세계의 부를 한층 공평하게 나눠 가지며 인류를 지탱하는 생태계 능력을 헤아려 그런 능력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바탕에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경제를 만들어 나가는 기본 원칙은 간단하다. 더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