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경제학의 개척자 이중환…①조선 지리경제학의 효시 『택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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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경제학의 개척자 이중환…①조선 지리경제학의 효시 『택리지』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3.30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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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사회 양극화·지역 불균형 해법 제시
▲ 청담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

[조선의 경제학자들] 사회 양극화·지역 불균형 해법 제시

[한정주=역사평론가] 지리경제학은 산업화 단계를 거쳐 정보지식화 단계로 넘어가는 요즘 시대에도 여전히 경제학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또한 지리적 조건·환경과 특정 산업의 상호 연관성을 밝히는 문제는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 놓여 있는 국가나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사안이기도 하다.

비록 지리경제학은 근대 산업화 이후에 생겨난 이론이지만 18세기 중엽 조선시대에 일찌감치 지리와 경제의 상호관련성을 자각한 사람이 있었다.

조선 후기 들어 일군의 학자들이 화이론적(華夷論的) 역사관과 성리학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 전반을 해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실학자라고 불리는 이들 학자 가운데 우리 국토를 ‘실사(實事)’와 ‘실용(實用)’의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다산 정약용과 청담 이중환이다.

정약용은 역사적 관점에서 우리 국토의 영역과 범위를 획정한 『아방강역고』를 집필해 우리나라의 역사적 영토 개념을 한반도 밖 만주 대륙으로까지 확장했다.

반면 이중환은 경제적·사회적 관점에서 전국 8도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택리지』를 집필해 지역과 인물·산업·생산 및 소비·주거·인심 등의 상호관련성을 밝혔다.

따라서 『아방강역고』가 이 시기에 나타난 역사지리서의 대표작이라면 『택리지』는 지리경제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택리지』는 이전 시대의 지리지나 지역 풍속지에서 다룬 물산(物産), 곧 전국 각 지방의 산업과 생산품을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다루었다.

조선의 대표적인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만 살펴보더라도 전국 8도의 생산 활동에 대해 단지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토산품을 다루는 데 그치고 있다.

예를 들면 경기도 여주목의 토산품은 실(絲)·쏘가리·누치이고, 평안도 용강현의 토산품은 삼(蔘)·옻·조기·상어·농어라고만 밝히고 있다. 토산품이 생산되는 지역적 특성과 조건에 대한 분석이나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택리지』는 각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조건을 살펴보면서 특정 지역에서 특정 산업과 토산물이 발달하는 이유를 밝혀놓고 있다. 이에 따라 농업이 발달한 지역과 상업이 발달한 지역 그리고 국제무역이 발달한 지역이 각각 다르게 기록되고 있다. 『택리지』 ‘팔도총론’ 가운데 ‘경상도’ 편의 상주와 ‘충청도’ 편의 목계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문경의) 남쪽은 함창 들판이고, 함창의 남쪽은 상주다. 상주는 낙양이라고도 부르는데 조령 아래에 있는 큰 도회지로 산이 웅장하고 들이 넓다. 북쪽으로는 조령과 가까워 충청도 및 경기도와 통하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에 접하고 있어 김해나 동해와 통한다. 물품을 실어 나르는 말과 짐을 실은 배가 남쪽과 북쪽에서 물길 혹은 육지로 모여든다. 따라서 이곳은 무역하기에 편리하다.” 『택리지』 팔도총론 경상도 편

상주는 들이 넓고 강에 접해 있어 농업이 발달할 수 있고 또한 충청도와 경기도 그리고 경상도를 잇는 육로와 수로의 교통 요충지로 상업이 발달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분석이다.

“목계는 강 하류에 자리하고 있어 생선을 취급하는 배와 소금을 다루는 배가 정박하고 외상 거래도 한다. 동해의 생선과 영남 산골의 물품이 모두 이곳에 모여들기 때문에 백성들은 모두 사고파는 일에 종사해 매우 부유하다. 목계 서편은 청룡사 골판이며 서쪽으로는 원주와 경계가 맞닿았다. 동쪽으로는 북창에서, 서쪽으로는 청룡사까지를 아울러 강북 마을이라고 부른다. 비록 강을 접하고 있어 경치가 뛰어나지만 땅이 모두 메말라 큰 강 남쪽에서 달천 서쪽까지의 기름진 땅에는 미치지 못한다.” 『택리지』 팔도총론 충청도 편

목계가 물품 집산지로서 상업, 특히 창고 보관업을 하기에는 적합한 곳이지만 토지는 그다지 기름지지 않아 농업을 하기에는 적당한 지역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상주가 농업과 상업이 두루 발전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면 목계는 상업이나 운송업은 발전할 수 있지만 농업은 발전하기 힘든 지리적 조건을 갖추었다는 얘기다.

이렇듯 이중환은 『택리지』 ‘팔도총론’과 ‘복거총론’의 ‘생리(生利: 이익을 생산함)’ 편을 통해 전국 8도 각 지역의 지리적 조건과 경제의 상호관련성을 밝혀 놓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최초로 지리경제학의 지평을 연 개척자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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