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 만난 조선 지식인·권력자 11인의 삶…『옛사람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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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에서 만난 조선 지식인·권력자 11인의 삶…『옛사람의 집』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6.05.0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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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1764호 창덕궁 낙선재. <문화재청 제공>

조선 24대 왕 헌종은 정비인 명헌왕후에게 후사가 없자 김재청의 딸을 경빈으로 맞아 창덕궁 중희당 동쪽에 낙선재 본채와 부속건물인 석복헌, 수강재 등을 지었다.

당시 낙선재 본채는 헌종의 서재 겸 사장채로,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로, 수강재는 헌종의 할머니였던 순헌왕후 안동 김씨가 기거했다.

그후 순종비 윤황후, 덕혜옹주, 영왕비 이방자와 아들 이구 등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164년간 조선왕조의 몰락 등 영욕의 아픈 상채기를 쓸어안고 있는 비운의 역사 공간으로 남아 있다.

반면 서운관(관상감)이 있던 고개란 뜻의 지명을 갖고 있는 운현궁은 구한말 정치 무대의 한 가운데에서 파란과 풍상의 역사 현장이다.

운현궁은 고종 황제 즉위 이듬해인 1864년 노락당과 노안당이 준공되면서 조성되기 시작해 1870년 이로당이 완공되면서 본모습을 갖추었다.

흥선대원군이 끊임없는 정적들의 암살 위험 속에서도 굽힘없이 기재를 펼쳤던 곳은 운현궁의 사랑채인 노안당이었다.

대원군은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되어 자신은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게 됐다는 뜻으로, 또 노인들을 편하게 모셔야 한다는 치국 이념을 노안당에서 발현시키고자 했지만 오히려 아집과 독선으로 그 뜻은 실각과 함께 사라졌다.

신간 『옛사람의 집』(가치창조)은 조선 최고의 지식인과 권력자 11인의 삶과 영욕의 역사를 그들이 살다 간 집을 통해 조명한다.

 

조선 황실과 덕혜옹주의 마지막 비운의 공간이었던 창덕궁 낙선재를 비롯해 권력에 살고 권력에 죽은 흥선대원군의 운현궁, 6칸 대청에 예술혼이 흐르는 김정희의 추사고택, 조선 최고 지식인의 이루지 못한 꿈이 어린 정약용의 여유당과 다산초당, 전통의 무게와 자연의 향취가 조화를 이룬 기대승의 애일당 등을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또한 살아 있는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남명 조식의 산천재와 계룡의 줄기 아래서 무릉도원을 꿈꾼 명재 윤증의 고택도 둘러보고 이내번의 선교장, 양산보의 소쇄원, 맹사성의 맹씨행단, 정여창의 고택까지 두루 살핀다.

“집은 곧 그 속에서 산 사람의 삶의 철학과 원형질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공간”이라고 믿는 저자는 “고상한 그들의 식견보다는 때론 콧등이 시큰해져 오는 연민을 갖게 하는 인간적인 편모를 들여다보려 애썼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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