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시대의 질서를 거부한 22명의 선비들…『조선이 버린 천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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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시대의 질서를 거부한 22명의 선비들…『조선이 버린 천재들』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6.05.13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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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폭정 때의 사관 김일손은 죽은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성종실록』에 실으려다 화를 입게 된다.

항우에게 죽임을 당한 의제를 단종에 비유하고 수양대군을 항우에 비유한 ‘조의제문’을 실은 것은 “신하(수양대군)가 임금(단종)을 찬시(자리를 빼앗고 죽임)했다‘는 기록을 후대에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

김일손은 조의제문에 “충분이 깃들어있다”고 덧붙였는데 이것이 유자광 같은 훈구 공신들에게 간파되면서 무오사화가 발생한다.

경북 청도군에서 지병을 풍병을 치유하다 의금부에 체포된 김일손은 권경유·권오복 같은 사관들과 사지가 찢겨 죽는 능지처참을 당했다. 또 모든 자손이 연좌돼 멸절됐다.

김일손에게 사초는 목숨을 걸고 후대에 전해야 할 진실이었다. 그가 자식보다 소중하게 전하고자 했던 ‘조의제문’은 『연산군일기』에 그의 국문(수사기록)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신간 『조선이 버린 천재들』(옥당)은 시대의 질서와 이념에 도전하고 시대의 벽을 넘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22명 조선선비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당대에는 이단아로 배척받았거나 멸문지화를 당했지만 이 시대에도 유효한 의미를 던져주는 역사의 선각자들이자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이다.

책에는 신념을 지키며 세상의 질서와 맞섰던 이들을 네 종류로 분류했다.

기존의 질서에 맞서 틀을 깨고자 한 사람들, 죽음으로 신념에 맞선 사람들, 사농공상의 철폐를 주장하며 가난 구제에 힘쓴 사람들, 주군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죽어간 사람들이다.

이단의 낙인 위협에서도 양명학자라고 커밍아웃한 정제두, 함경도에 대한 지독한 지역 차별로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진 것을 보다 못해 분연히 일어선 홍경래, 인조가 장악한 세상에다 대고 인조반정은 쿠데타라고 꾸짖은 유몽인, 소중화 사상 속에서 오랑캐의 역사로 인식되던 발해사를 우리의 역사로 인식하는 파격을 행한 유득공, ‘놀고먹는 자들은 나라의 좀’이라며 양반도 상업에 종사케 하라고 주장한 박제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탐학과 착취로 고통받던 농민군을 일으킨 김개남 등이 소개된다.

그들은 당대엔 이상한 사람이었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위험한 인물이었다. 결국 뛰어난 이론가에, 학자에, 실천가였지만 세상에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유배지를 전전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또한 경종 사후 노론 세력이 추대한 임금 영조를 인정하지 않다가 죽임을 당하면서 ‘시원하게 죽이라’고 당당히 외친 김일경, 죽음 앞에서도 심지어 웃으며 형장으로 끌려 간 조선 천주교 도입의 중심인물 정하상, 나주 벽서사건에 연루돼 그들과의 연대를 시인하면 곧 죽음임을 알면서도 태연히 ‘그렇다’고 말한 유수원 등도 있다.

그들은 닫힌 질서의 억압을 거부하고 그건 틀렸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사의 쟁점에 정면 도전하는 역사서와 생존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나 승자의 역사에 묻히고 왜곡됐던 인물들을 찾아내 재해석한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문화연구소 소장은 “이들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이자 미래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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