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역사연구회 ‘뇌룡재’, 북악산·인왕산서 역사·인문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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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연구회 ‘뇌룡재’, 북악산·인왕산서 역사·인문 기행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6.05.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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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함께 세검정에서 노닐다”…다음 달 16일 한정주 역사평론가 해설
▲ 유숙, 세검정, 19세기, 지본담채, 26.1×58.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다산 정약용과 함께 세검정에서 노닐다”…다음 달 16일 한정주 역사평론가 해설

<헤드라인뉴스>가 첫 번째 역사·인문 기행을 마련하고 독자들을 초청한다.

서울 북악산과 인왕산 코스를 탐방하는 역사·인문 기행은 오는 6월18일(토) 한정주 고전·역사연구회 ‘뇌룡재’ 대표의 해설로 진행된다.

역사평론가 겸 고전연구가인 한정주 대표는 <헤드라인뉴스>에 ‘호, 조선선비의 자존심’을 연재했으며 현재 ‘조선지식인의 글쓰기 철학’과 ‘조선의 경제학자들’을 연재하고 있다.

이번 역사·인문 기행은 종로구 창의문에서 출발해 백사실 계곡(백석동천), 장의사 터, 탕춘대 터, 세검정, 홍지문과 탕춘대성, 석파랑(흥선대원군 별장 별채), 석파정(흥선대원군 별장 본채)으로 이어진다.

탐방 시간은 약 5시간 정도가 소요될 예정이며 참가비는 무료다.

집결지인 창의문은 경복궁 북쪽에 위치한 북소문으로 자하문이라고도 불린다.

혜화문(동소문), 소덕문(소의문·서소문), 광희문(수구문·시구문·남소문)과 함께 4소문 중 하나다.

4소문은 한양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 4대문 안쪽에 위치해 있다.

첫 번째 탐방 코스인 백사실 계곡은 숙정문을 지나 북악산 산마루를 넘으면 만나게 된다.

연못터와 주초석만 남은 건물터 등 옛 정원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백사(白沙) 이항복의 별장터가 있어 붙은 이름으로 전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정국 때 소일차 들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백사실 계곡에서 세검정초등학교 교정의 장의사 터를 지나면 탕춘대를 만나게 된다.

“한양 서북쪽에 자리한 백악산의 오른 기슭에 문이 있다. 장의문(莊義門)이다. 그곳 오른쪽에 큰 산이 우뚝 솟아 길게 둘러싸 남쪽으로 뻗어 내렸다. 삼각산으로부터 내려온 백악의 줄기다. 장의문의 왼쪽으로는 산이 갈라져 있는데, 북쪽 아래에는 산의 형세가 오른쪽 산과 서로 대칭을 이루어 바위와 돌이 더욱 기묘하고 괴이하다. 아슬아슬하게 솟아 오른 바위가 하나는 남쪽으로 내달리고 하나는 북쪽으로 달아나 그 사이에 시냇물을 만들었다. 위로는 탁 트여 구렁을 이루고 아래로는 점점 좁아져 협곡이 되었다. 이렇듯 5리쯤 가다보면 들판이 나타나는데, 그곳은 오른쪽 산의 남쪽이 된다. 한 골짜기는 나뉘어 왼쪽으로 달리는데, 두 산 사이에서 돌연 우뚝한 언덕을 이룬다. 그 위는 넓고 평평한데, 바로 탕춘대(蕩春臺)다.

영조 때의 학자로 포은 정몽주의 후손인 정제두의 『하곡집(霞谷集)』에 등장하는 ‘탕춘대기(蕩春臺記)’의 일부분이다.

탕춘대는 종로구 신영동 136번지에 있던 돈대로 연산군이 건축하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전해진다. 영조는 탕춘대에 거둥해 활쏘기로 무사를 뽑고 1754년 탕춘대를 고쳐 연융대라 했다.

탐방은 홍지문과 탕춘대성, 석파랑(흥선대원군 별장 별채)과 석파정(흥선대원군 별장 본채)으로 마무리된다.

이번 역사·인문 기행 코스와 관련 다산 정약용의 ‘유세검정기(游洗劍亭記)’는 참고할 만한 글이다.

“세검정이 자랑하는 빼어난 경치란 소나기가 내릴 때 폭포처럼 사납게 굽이치는 물살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가 막 내리기 시작하면 대개 수레를 적셔가면서 교외로 나가려고 하지 않고, 비가 갠 후에는 계곡의 물 역시 이미 그 기세가 꺾이고 만다. 이 때문에 세검정은 도성 근처에 있음에도 성 안의 사대부 가운데 정자가 자랑하는 빼어난 경치를 만끽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해년(1791년. 정조 15년) 여름날, 나는 한혜보를 비롯한 여러 사람과 남부 명례방(明禮坊)에 모였다. 술이 여러 잔 돌고 나자 후덥지근한 열기가 확 올라오면서 먹구름이 잔뜩 끼고 천둥소리가 은은하게 울렸다.

이 광경을 보고서 나는 벌떡 일어나 ‘소나기가 내릴 징조네. 함께 세검정에 가보지 않겠나. 만약 가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한꺼번에 벌주(罰酒) 열 병을 주겠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모두 ‘이를 말인가!’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마부를 재촉해 창의문을 나서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는데 주먹만큼 컸다. 더욱 힘껏 말을 달려 세검정 아래에 당도하니 수문(水門) 좌우의 계곡에서는 고래 한 쌍이 물을 뿜어내듯 이미 물줄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의 옷소매 역시 빗방울에 얼룩졌다.

세검정에 올라 자리를 펴고 앉았는데 난간 앞의 수목(樹木)은 이미 미친 듯 흔들리고 한기(寒氣)가 뼈 속을 파고들었다. 이때 비바람이 크게 일더니 산골짜기 물이 갑자기 쏟아져 내려 눈 깜짝할 사이에 계곡은 메워지고 요란하게 물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모래가 흘러내리고 돌이 굴러 물속에 마구 쏟아져 내리면서 사납게 굽이치는 물살이 세검정의 주춧돌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물살의 기세가 웅장하고 소리가 맹렬해 정자의 서까래와 난간이 진동하자 모두 오들오들 떨며 불안해했다.

그래서 내가 ‘어떠하냐?’고 묻자 모두 ‘이루 말할 수 없이 좋구나’라고 대답했다. 술과 안주를 가져와 익살 섞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놀았다.

시간이 지나자 소낙비도 그치고 구름도 걷히면서 계곡 물 역시 점차 잔잔해졌다. 저녁나절이 되자 지는 해가 나무에 걸려서 붉으락푸르락 천만가지의 형상을 띠었다. 서로 팔을 베고 누워서 시를 읊조렸다.

한참을 지나 이 소식을 들은 심화오가 허겁지겁 쫓아왔다. 그러나 이미 물살은 잔잔해진 뒤였다. 처음 심화오 더러 함께 오자고 했으나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여러 사람이 뒤늦게 달려온 그를 두고 조롱하며 약을 올렸다. 심화오와 함께 술을 한 차례 돌려 마시고 돌아왔다. 당시 그 자리에는 홍약여, 이휘조, 윤무구도 함께 있었다. 정약용,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세검정에서 노닌 기록(游洗劍亭記)’

<헤드라인뉴스>와 함께 하는 고전·역사연구회 ‘뇌룡재(雷龍齋)’ 1차 역사·인문 기행
진행·해설 한정주 역사평론가 겸 고전연구가 (고전·역사연구회 ‘뇌룡재’ 대표)
일시 2016년 6월 18일(토요일) 오전 11시 30분
장소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 앞
탐방코스 창의문 → 백사실 계곡(백석동천)·점심식사 → 장의사 터 → 탕춘대 터 → 세검정 → 홍지문과 탕춘대성 → 석파랑(흥선대원군 별장 별채) → 석파정(본채)
소요시간 약 5시간 (오전 11시 30분 ~ 오후 4시 30분)
참가비 무료
준비물 도시락(김밥 등 최대한 간편하게) / 석파정 입장료(9000원)
참가신청 02-720-1745 / 010-6633-5489 (선착순 10명)
찾아오는 길 경복궁역(지하철 3호선) 3번 출구 → 버스정류장에서 부암동 방향 버스(1020, 7022, 7212번) 승차 → 윤동주문학관(자하문고개) 하차. (10분 정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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