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南冥) 조식③…‘위민과 안민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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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南冥) 조식③…‘위민과 안민의 철학’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4.05.0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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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⑨
▲ 1576년(선조 9년) 조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덕천서원

조식은 ‘물러날 퇴(退)’자를 평생 품고 살았지만 임금이 부르면 어쩔 수 없이 벼슬에 나섰다가 병을 핑계로 물러나기를 거듭했던 이황의 애매모호한 ‘출처(出處)’와는 다르게 죽을 때까지 더러운 권력에 몸담지 않겠다는 자신의 ‘출처(出處)’ 철학을 오롯이 지킨 조선 유일의 산림처사였다.

그는 1553년(명종 8년)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 벼슬을 권하는 이황에게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도둑’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물건’, 즉 명망(名望)을 훔쳐서 벼슬을 도모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면서 정중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출사(出仕)에 전혀 마음을 두지 않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조식과 이황 사이에 오고 간 편지와 답변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여기에서 ‘건중(楗仲)’은 조식의 자(字)다.

“지난번 이조(吏曹)에서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천거하자 성상(聖上)께서 어진 인재를 얻어 임용하는 일을 즐거워하여 특별히 명을 내려 품계를 뛰어넘어 6품직에 서임(敍任)하셨습니다. 이는 진실로 우리 동방에서 예전에도 찾아보기 힘든 장하고 큰 일입니다. 황(滉)은 개인적으로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롭지 않고, 군신 간의 큰 윤리를 어찌 폐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비 중에 간혹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곤란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만 과거(科擧)가 사람을 혼탁하게 만들고 조상의 음덕이나 다른 사람의 천거로 미관말직(微官末職)에 나아가는 것을 천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그 몸을 깨끗이 하고자 하는 선비는 부득불 종적을 감추고 숨어서 벼슬에 나아가는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산림(山林)에서 천거되었으니 과거의 혼탁함도 없고 품계를 뛰어넘어 6품직에 제수되었으니 미관말직으로 몸을 더럽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때문에 그대와 동시에 천거된 성수침은 이미 토산(兎山)에, 이희안은 고령(高靈)에 부임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예전에 관직을 사퇴하고 은거하여 장차 그대로 몸을 마치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전에는 나아가지 않다가 지금은 나왔으니 이것이 어찌 그 뜻에 변화가 있어서겠습니까? 그들은 반드시 ‘내가 지금 출사(出仕)하는 것은 위로는 성조(聖朝)의 아름다움을 이룰 수 있고, 아래로는 스스로 쌓아온 뜻을 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 그렇게 할 뿐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어서 그대를 전생서(典牲暑)의 주부(主簿)에 제수하니 사람들은 모두 ‘조군(曺君)의 뜻이 곧 두 사람의 뜻이다. 이제 이 두 사람이 나왔으니 조군도 마땅히 나오지 않을 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끝내 나오지 아니하였습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라면 깊숙이 숨어 지내는 선비 중에서 뛰어난 이를 뽑았으니 알아주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나아갈 때가 아니라고 한다면 임금께서 어진 인재를 목이 말라 물을 찾듯이 기다리고 있으니 때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퇴계전서』 ‘조건중에게 보내다(與曺楗仲)’

“평소 하늘의 북두성(北斗星)처럼 우러러보았고 책 속에 있는 사람과 같이 멀어 만나기 어렵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문득 간절한 말을 담은 편지를 받고 보니 약(藥)으로 삼을 말씀이 넓고도 많아 일찍이 아침저녁으로 만난 듯합니다.
식(植)은 어리석고 어두운데 어찌 자신을 아끼겠습니까? 단지 허명(虛名)을 꾸미고 취해 한 세상을 크게 속여 임금의 총기(聰氣)를 그르친 것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도 오히려 도둑이라고 말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물건을 훔치는 일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이 때문에 발을 디딜 땅이 없고 날마다 하늘의 주벌(誅罰)을 기다렸는데 과연 하늘의 벌이 이르렀습니다.

지난해 겨울에 갑자기 허리와 등이 찌르듯이 아프더니 한 달 여 동안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이제 행인들 틈에도 끼지 못하게 되었으니 비록 평평한 땅 위를 밟고 뛰고자 한들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이에 사람들이 모두 나의 단점을 알고, 나 또한 사람들에게 나의 단점을 감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비웃고 탄식할 만합니다.” 『남명집』 ‘퇴계에게 답하는 글(答退溪書)’

필자는 수많은 조선 선비들의 삶과 철학을 살펴보았지만 조식만큼 크고 넓은 세계와 당당한 기상을 품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는 진실로 한 번의 날개 짓으로 세상을 뒤흔든 전설 속의 새인 대붕(大鵬)의 위세와 풍모를 지닌 산림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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