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은 풀로 만들어 비를 피했던 우구(雨具)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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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은 풀로 만들어 비를 피했던 우구(雨具)일 뿐”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6.1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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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⑥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⑥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덕무의 수많은 글 가운데 ‘평범과 일상’의 미학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책은 『앙엽기(盎葉記)』이다.

이 책은 제목부터가 아주 친근하다. 옛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들을 감나무 잎에 적어 항아리에 넣어두었는데, 그 글들을 가리켜 항아리(盎)에 든 감나무 잎사귀(葉)에 적은 기록(記)이라고 해서 ‘앙엽기(盎葉記)’라고 불렀다.

특별한 이유나 목적 없이 일상생활을 하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그때그때 적어 놓은 일종의 메모나 노트라고나 할까?

이덕무는 특히 『앙엽기(盎葉記)』에서 우리 주변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풍속과 풍습에 관한 글들을 무척 많이 남겼다. 예를 들면 ‘갓’의 원형과 유래와 더불어 갓의 폐단을 논하면서 갓의 개조에 대해 논한 글이 대표적인 경우다.

“갓은 농부(農夫)의 우구(雨具)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소귀천을 막론하고 사례(四禮: 관혼상제) 때면 다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비가 오지 않을 때도 쓰니, 이는 매우 무의미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이 싸움하기를 좋아하므로 기자(箕子)가 우리나라에 와서 큰 갓과 긴 소매의 옷을 지어 입혀 백성으로 하여금 몸을 마음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는 싸움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는데, 이것은 믿을 수 없는 허황한 말이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옛 고깔<弁>의 유제(遺制)라 하였으나, 이 역시 그렇지 않다. 고깔은 홍고랑(紅姑娘: 꽈리)과 같이 생겼으므로 홍고랑을 일명 피변초(皮弁草)라 하니 지금의 갓은 위는 평평하고 아래 갓양태는 넓은데 어찌 고깔이라 보겠는가?

옛날에 풀로 갓을 만들어 비를 피했던 것일 따름이다.” 『청장관전서』, 「앙엽기」, ‘갓은 우구(雨具)이다’

“갓의 폐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나룻배가 바람을 만나면 배가 기우뚱거리는데, 이때 조그마한 배안에서 급히 일어나면 갓양태의 끝이 남의 이마를 찌르고 좁은 상에서 함께 밥을 먹을 때에는 양태 끝이 남의 눈을 다치며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난장이가 갓쓴 것처럼 민망하다. 이는 사소한 일이지만 들에 가다가 풍우(風雨)를 만나면 갓모자는 좁고 갓양태는 넓고 지투(紙套)는 경직하여 바람이 그 사이로 들어오면 펄럭이는 소리가 벽력 같은데 위로 갓이 말려 멋대로 펄럭인다.

양쪽 갓끈을 단단히 동여매면 갓끈이 끊어질 듯 팽팽해져 턱과 귀가 모두 땅겨 올라가고 상투와 수염이 빠지려 한다. 유의(油衣)는 치마같이 하여 머리에 써서 손으로 잡는 것인데 바야흐로 비바람이 불어칠 때는 갓이 펄럭여 일정하지 않으므로 불가불 끈을 풀어 손으로 갓의 좌우를 부축해야 하는데 빗물이 넓은 소매로 들어오므로 무거워서 들 수가 없다.

또 말이 자빠지려 할 경우 어떻게 손으로 고삐를 잡겠는가. 이렇게 되면 위의를 잃은 것을 부끄러워할 겨를은커녕 죽고 사는 것이 시각에 달리게 된다. 이는 다 갓모자가 좁아 머리를 덮지 못하고 갓양태가 넓어 바람을 많이 타기 때문이다.

일찍이 여진(女眞) 사람이 말 타는 것을 보았는데 급한 비를 만나면 얼른 소매와 옷깃이 있는 유의(油衣)를 입고 또 폭건(幅巾)같이 부드러운 모자를 쓰고 채찍질하여 달렸다. 그러니 어찌 쾌활하지 않겠는가?

또 지금의 갓은 제작이 허술하여 갓모자와 갓양태의 사이에 아교가 풀어지면 서로 빠져버린다. 역관(譯官)들이 연경(燕京: 북경)에 들어갈 때 요동(遼東) 들판을 지나다가 비를 만나 갓양태는 파손되어 달아나고 다만 모자만 쓰고 가니 중국 사람이야 우리나라 풍속에 이런 관(冠)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보통으로 보나 같이 간 사람은 다 조소하는데 그렇다고 어디서 갓을 사겠는가.

매양 야중(野中) 행인들을 보니 비를 만나도 갓 위에 씌울 것이 없는 사람들은 갓양태가 빠져나가고 부서질까 염려하여 풀을 뜯어 갓양태 아래에 테를 만들어 가리며 또는 갓을 벗어 겨드랑에 끼고 한손으로는 상투를 잡고 허겁지겁 달린다. 대개 갓 하나의 값이 300∼400냥이 되므로 갓을 생명처럼 보호하여 그 군색하고 구차함이 한결같이 극에 달했다.” 『청장관전서』, 「앙엽기」, ‘갓의 폐단’

“요즈음 갓의 제도는 점점 높고 넓어져 쓰기에도 아치(雅致)가 없고 균형이 안 맞아 볼품이 없다. 속담에 ‘갓이 너무 크면 항우(項羽)라도 짜부러 들고 갓이 파손되면 학자라도 낭패스럽다’ 한다.

조정(朝廷)에서 영(令)을 내려 일적 금하고 별도로 관건(冠巾)을 만들어 반포하되 등위(等位)를 정해야 한다. 다만 소립(小笠)을 제작하여 말 타는 자와 보행자가 야행(野行)할 때에 머리에 쓰고 비를 피하거나 햇볕을 가리는 도구로 하는 것은 괜찮다.

그 제도는 모자는 이마를 덮을 수 있으면 되고 꼭대기는 지금의 갓 같이 평평하지 않아도 좋으며 만약 꺾을 수 있으면 꺾어서 전립(氈笠)처럼 뾰족하지 않은 것이 좋다. 다만 갓모자 높이는 조금 낮추고 갓양태는 날카롭지 않게 해야 한다. 베 2자 5푼이면 되고 갓끈은 넓되 길게 할 것은 없다.” 『청장관전서』, 「앙엽기」, ‘갓은 개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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