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전히 안전하지 못한 대한민국
상태바
[칼럼] 여전히 안전하지 못한 대한민국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05.07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한국을 떠나 3년여 동안 미국생활을 한 적이 있다. 아는 이도 없고 현지 생활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이 불과 보름여 만에 갑작스럽게 떠나야 했다.

출국을 앞두고 만난 친구들은 한결같이 나의 안전을 염려했다. 더구나 내가 가는 지방이 텍사스라는 점에서 그들의 걱정은 더했다.

뉴욕·로스앤젤레스 등과는 달리 서부활극에서나 볼 수 있는 황량한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로 무법천지일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한 친구는 방탄복이라도 하나 사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에 불과했다. 야근 후 동료들과 다운타운의 선술집에서 잔뜩 술에 취해 어깨동무를 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불러도 총기를 소지한 강도는 한 단 번도 만나지 않았다.

종업원을 구하지 못한 지인의 주유소에서 한 달 동안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운타운 외곽의 가장 위험한 지역에 위치한 주유소였지만 행인은 물론 홈리스들에게도 위험을 느끼지 못했다.

운이 좋았던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위험한 한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더 궁금해 했다.

한국전쟁 이후 금방이라도 전쟁이 재발할 것만 같은 남북 대치가 이어지고 있으며 1970~80년대에는 반독재 시위가 끊이질 않았던 한국사회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들에게 한국은 전쟁 위험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안전하지 못한 나라였다.

그러나 이 같은 위험은 적어도 눈에 보이는 위험들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불확실성은 아니다. 문제는 무방비상태에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갑자기 발생하는 위험들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이러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한국에서 더 이상 살기가 불안하다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꼼짝 않고 집안에만 있지 않는 한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위험이고 공포가 돼버렸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기도 무섭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기도 무섭다. 엔진고장을 알고도 막무가내 비행을 감행한 용감한(?) 항공사도 있다. 육해공 어느 곳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안전을 외친다. 그나마 외양간도 제대로 고치는 경우가 없어 사고는 늘상 반복된다.

외국의 한 신문은 성장지상주의에만 몰두했던 한국사회가 도외시했던 안전 등의 문제들이 표면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심지어 구조자 한 명 없는 구조작업을 두고는 저개발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한국인의 특성으로 지적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빨리빨리’다. 그러나 그 ‘빨리빨리’에는 ‘대충대충’이라는 또 다른 단어가 숨어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인사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안전’이라는 단어 속에서도 ‘빨리빨리’와 ‘대충대충’이라는 단어는 어김없이 읽혀진다. 그들이 장담하는 안전시스템 구축이 그렇게 빨리 가능할 수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여전히 안전하지 못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