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능력의 쓰임을 오이에 빗댄 이옥의 ‘과어(瓜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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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능력의 쓰임을 오이에 빗댄 이옥의 ‘과어(瓜語)’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7.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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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⑨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⑨

[한정주=역사평론가] 너무나 흔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오이’를 소재로 삼아 그 다양한 용도를 논하면서 사람을 잘 만나면 크기와 용도에 따라 긴요하게 사용되지만 사람을 잘못 만나면 버려지는 운명에 처하는 오이처럼 사람의 능력 또한 어떤 시대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쓰임을 얻을 수도 있고 버려질 수도 있다는 은미(隱微)한 뜻을 담고 있는 ‘과어(瓜語)’라는 이옥의 글을 다시 읽어보자.

이 글은 하찮은 소재와 글감을 갖고도 결코 하찮지 않은 뜻과 정신을 얼마든지 펼칠 수 있다는 산 증거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정신이 ‘살아 있는 글’이라면 그 소재와 글감이 무엇이 된다고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작품이다.

“재실齋室 아래로 마당이고, 마당 아래로 채마밭이다. 채마밭에는 보리를 심어서 두 말을 수확할 수 있다. 해마다 오이를 심어서 60여 뿌리의 오이를 거둘 수 있다.

…… 크기가 작은 오이는 꼭 엄지손가락만 하고, 큰 오이는 양의 뿔만 하고, 그보다 더 큰 오이는 한 손으로 움켜쥘 만하다.

크고 늙은 오이는 둘레가 한 자나 된다. 크기가 작은 오이는 깨끗하게 씻은 다음 소금에 절여서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씹어 먹는데, 그 맛이 화주火酒(소주)와 잘 어울린다.

크기가 큰 오이는 자르고 갈라서 미나리와 파와 마늘 등의 여러 가지 재료를 속에 넣은 다음 혹은 소금에 절여두거나, 혹은 초장(혜장醯醬)을 첨가하거나, 혹은 장수醬水(간장)를 끓여서 절임을 만든다.

날씨가 추워서 절임이 잘 숙성되지 않으면 매실을 넣는다. 한 손으로 움켜쥘 만한 크기의 오이는 국을 끓여서 먹거나 또는 나물로 무쳐서 먹는다.

…… 오이의 쓰임새는 한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그 대략일 뿐이다.

…… 나는 알지 못한다. 오이가 장차 안주가 될 것인지 혹은 반찬이 될 것인지? 장차 절임이 될 것인지? 장차 국이 될 것인지 혹은 나물이 될 것인지? 장차 늙어서 버려질 것인지 혹은 씨만 남기고 말 것인지? 이것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옥,《봉성문여鳳城文餘》 <오이 이야기〔瓜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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