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상주의 경제학파의 개척자 유수원…②시행할 수 없어도 드러내야 할 이론과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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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주의 경제학파의 개척자 유수원…②시행할 수 없어도 드러내야 할 이론과 정책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7.20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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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맬서스 『인구론』 맹점 60년 앞서 비판한 재야 경제학자
▲ 조선의 관제, 과거제도, 학교, 노비제도, 조세제도, 군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개혁 방향을 제시한 유수원의 저서 『우서』.

[조선의 경제학자들] 맬서스 『인구론』 맹점 60년 앞서 비판한 재야 경제학자

[한정주=역사평론가] 『우서(迂書)』는 조선의 학자나 지식인들이 저술한 서책 중에서 가장 독특한 구성을 갖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문답(問答) 형식을 통해 조선의 현실과 제도를 중국의 그것과 철저하게 비교·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문답 내용은 설명적이라기보다 지나칠 정도로 논쟁적이다. 보통 조선시대의 서책들을 보면 맨 앞머리에 저술 혹은 편찬의 뜻과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서문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서』의 맨 앞머리에는 서문 대신 ‘책을 저술하는 근본 취지’가 아주 논쟁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혹왈(或曰) : “그대가 이 책을 쓴 것은 과연 세상에 시행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답왈(答曰) : “병이 들어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세상에 시행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겠는가.”

혹왈(或曰) : “그렇다면 이 책을 무엇 때문에 저술한 것인가?”

답왈(答曰) : “세상의 모든 일은 이치가 있으면 반드시 그 이치를 드러내는 말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생각해볼 때 세상사에는 반드시 이러한 이치가 있으므로 스스로 말할 뿐이니 시행될 수 있거나 혹은 시행될 수 없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옛 사람들이 어찌 시행될 수 있고 없음을 계산해 그토록 수많은 서적을 저술했겠는가! 나를 두고 ‘공연히 스스로 고통을 겪고 있을 뿐 누가 알아주겠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항상 그와 같은 사람들의 간악한 마음과 누추하고 졸렬한 생각을 미워했다. 그래서 그들과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대가 다시 이와 같은 질문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서』 ‘이 책을 쓰는 근본 취지(記論撰本旨)’

이처럼 독특한 구성 때문에 『우서』는 그 어떤 서책보다도 저자의 주장과 논리를 명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럼 유수원이 비록 세상에서 시행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밝혀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조선의 ‘부국(富國)’과 백성의 ‘안민(安民)’을 위한 체제 개혁 이론과 정책이었다.

곧 이 책에서 유수원은 나라가 허약하고 백성이 가난한 근본적인 원인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부국안민을 이룰 수 있는 기본 방향과 구체적인 방법을 찾았다.

크게 보아 『우서』는 체제 개혁의 방향을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질서와 차별을 철폐하는 ‘사회 개혁’과 상업적 농업 및 상공업의 발전을 꾀하는 ‘경제 개혁’에서 찾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유수원은 사회 개혁과 경제 개혁을 불가분의 관계로 보았다. 즉 조선 사회의 신분 질서와 시스템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경제 발전은 불가하다고 보았다.

그는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와 차별이 개인의 능력 개발과 직업의 분화와 전문성을 억제해 백성들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고 백성의 직업이 안정되지 못하고 빈곤하기 때문에 나라 역시 허약하고 빈곤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반드시 신분제 철폐라는 사회 개혁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경제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서』에서 다루고 있는 경제 개혁의 방안은 뒷날 북학파를 중심으로 한 중상주의 경제학자들의 논리와 주장을 선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유수원은 이 책에서 기존의 농업경제 시스템과 ‘농본상말(農本商末)’의 경제 마인드를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구상은 상업적 농업과 상공업 발전을 중심으로 경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한편 농사 기술과 농기구의 개선으로 토지 생산성을 높여 기존 농업 체제의 체질 또한 개혁한다는 것이었다.

『우서』의 경제 개혁안은 박제가의 『북학의』와 유사한 점이 많다. 물론 『우서』가 『북학의』보다 40여 년 가까이 앞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북학의』가 『우서』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어도 반대로 『우서』가 『북학의』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누가 누구를 계승했고, 누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원조 논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유수원의 『우서』에는 『북학의』에는 나타나지 않은 아주 급진적인 개혁사상이 숨어 있다는 사실만은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박제가를 비롯해 18세기에 개혁을 부르짖은 여러 실학자나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양반 사대부의 특권을 억제·폐지하거나 또한 양반 사대부 역시 상공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지만 『우서』에서처럼 신분 질서의 타파를 경제 발전의 전제 조건으로까지 다루지는 못했다.

이 점에서 『우서』는 ‘신분적으로 자유로운 시민’과 ‘직업의 자유 선택과 전문적 분업화’를 전제로 탄생한 근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원리를 가장 잘 포착한 혁명적인 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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