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우’라는 한숨 소리조차 좋은 글감으로 삼은 문장가 이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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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라는 한숨 소리조차 좋은 글감으로 삼은 문장가 이학규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7.22 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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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⑪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⑪

[한정주=역사평론가] 마지막으로 외할아버지 이용휴와 외삼촌 이가환에게서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익히고 문장을 배웠던 문장가 이학규가 지은 ‘서소기(舒嘯記)’라는 글을 함께 읽어보자.

‘서소(舒嘯)’는 ‘한숨을 쉰다’는 뜻인데 이학규는 보통의 사람들이 글감으로 삼으리라고는 상상하기도 힘든 ‘후유!’라는 한숨 소리를 글의 소재로 삼아 삶의 냄새가 물씬 배어나는 한 편의 기발한 글을 남겼다.

“짐을 짊어지고 길을 가던 사람이 무거운 짐을 풀어놓고선 ‘후유!’ 하고 한숨을 돌린다. 지팡이를 짚고 비탈진 고개를 오르던 사람이 평탄한 곳에 이르러선 ‘후유!’하고 한숨을 돌린다. 그동안 쌓인 노고를 이미 마치고 시원하게 한숨을 내쉬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 소리가 확 터져 나오는 것이다.

요즈음 시골 풍속에 이른바 ‘한숨을 내쉰다〔舒嘯〕’ 는 것이 모두 이렇다고 하겠다.

무천茂川 서생徐生은 교외에 밭을 몇 이랑 가지고 있는데, 그 밭 가운데 집을 짓고 여덟 식구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간간이 꽃과 과수의 모종을 심고 경서經書와 사기史記 등의 서책을 살펴보고 헤아린다. 고생과 피곤에 찌든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데 자신이 사는 집에 ‘한숨을 내쉰다’는 뜻의 ‘서소舒嘯’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집에 이름을 붙인 까닭을 물었다. 그랬더니 서생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가난한데다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네. 또한 여러 자매들의 자녀와 조카들까지 데리고 있었네. 아침저녁으로 필요한 물건은 물론이고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에 꼭 갖추어야 할 물건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만 바라보며 도움을 기대했네.

나는 시끌벅적하거나 번잡스러운 것을 싫어하고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네. 그런데 지금 나는 물건이나 논밭을 매매하는 물목物目이나 적는 늙은 장기掌記가 되어 의대衣帶를 갖추어 입고 분주하게 저자거리를 드나들며 날마다 비단과 곡물이 들고 나는 내역과 가득 쌓인 장부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네.

이것이 어찌 나의 뜻이겠는가? 매일 나는 한번 이 집에 이르러 문 앞에 서면 마치 아홉 차례나 꺾어진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가다가 평탄한 곳을 만난 것처럼 상쾌하고, 방안에 누워 쉬고 있으면 또한 마치 만 근이나 되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것처럼 날아오를 듯하네.

그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후유!’하는 한숨 소리가 터져 나온다네. 마치 숲을 헤치고 걷는 저녁나절이나 오동나무에 기대어 앉은 동틀 무렵이면 맑은 소리가 깨끗하고 뚜렷하게 터져 나와 고목에 내려앉은 솔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 높이 솟은 버드나무에 매달린 매미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네.

내가 한가로운 날을 얻어서 비단과 곡물 그리고 장부 따위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그 다음 순간을 기다려보게. 불을 때 황량黃粱(메조)으로 밥을 짓고 노규露葵(아욱)를 삶아 먹으면서, 마땅히 내가 자네와 더불어 어떤 음식이 더 맛있는지 한번 확인해보겠네.’” 이학규,《낙하생집洛下生集》,〈문의당집文漪堂集〉, 서소기舒嘯記

‘휴유!’라는 한숨 소리조차 좋은 글감이 되어 이렇듯 기발한 글을 쓸 수 있는데 도대체 세상 무엇이 글의 소재와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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